아비규환 속으로

영문을 모른 채 버려졌다

by 강나루

CRPS의 통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끔찍한 고통이었다.

한 번 돌발통이 시작되면 마약 진통제 한두 알 정도론 꿈적도 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괴물 같은 놈이었다. 처음엔 몇 알을 먹어야 통증이 줄어드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해 한꺼번에 여러 알을 먹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여 심한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게다가 CRPS이후로 자율신경 실조증과 해리성 둔주, 해리성 기억상실, 불안장애 등 여러 가지 병들이 연달아 발병하며 나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며 망가지는 내 옆을 지키는 것은 하나뿐인 딸과 강아지 콩이뿐이었다.




병원 가까운 곳으로 이사 나오기 서너 달 전부터 내가 몸이 많이 아파 정신이 없으니 잔금을 확실히 챙기고 금액을 알려 달라고 말하던 내게, 자신이 확실히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네 몸만 챙기라고 큰소리쳤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그저 말로만 알겠다고 대답했던 남편이었다.

막상 이삿날 짐을 빼고는 친정에 누워 있는 내게 딸이 전화로 6천만 원이 부족하다고 알려 왔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어이없는 얘기에 놀란 것도 잠시 당장에라도 돈을 구하지 못하면 큰일이 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정신없이 돈을 구하려 애를 썼지만 하루 만에 그 큰돈을 마련하는 게 쉬울리는 만무했다.

결국엔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고 부족한 돈을 메워주신 친정 부모님은 내가 남편과 짜고 돈을 뜯어내려 했다고 생각하셨다. 40년 가까이 나를 곁에 두고 기르시고 겪으신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은 이삿날 생겼던 돈 문제가 나와 남편이 함께 작정하고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했다가 후에는 누가 잘못을 했든 간에 부부는 함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내게도 잘못이 있으니 화가 풀릴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는 이유로 모두 내게 연락을 끊어 버렸다.

정작 잘못을 저지른 남편은 입을 다물어 버렸고 나는 한순간에 사기꾼, 도둑년이 되어 있었다.


병을 겪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고통이었던 내게, 남편과 가족들의 행동은 참담함을 넘어 분노이고 배신이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가족들이 내게 한 짓들은 내가 여태껏 살아오며 보여준 모든 것들을 부정(否定) 하는 것이었다.

가족들 중 누구도 내 얘기를 들어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내게 가족이 있기는 했었나 싶을 만큼 그들은 날 철저히 외면했다. 평생을 가족들에게 헌신하며 사랑했는데... 그들은 너무 쉽게 나를 버렸고 그로 인해 난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조차 상실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어려울 때, 가장 아프고 약해진 순간에 내게서 등을 돌린 가족들로 인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족들과 하나님을 원망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항상 모든 것을 제대로 통제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던 내게 예상치 못했던 가족들의 행동은 기억상실로 인해 많은 순간들을 놓치며 살고 있었다 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뼛속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 일로 인해 내 병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듯 점점 나빠졌다.




더 기가 막힌 건 남편의 태도였다.

정작 잘못을 저지른 남편은 왜 그랬냐는 내 말에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닫고 있었다. 심지어 매일 통증에 못 이겨 이를 악물다 잇몸이 녹고 생니가 부러지는 고통을 견디며 하루에도 열댓 번씩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 기절하는 나를 방관자처럼 바라보기만 했다.

배신감과 울분을 풀 방법이 없었다.

통증이 심해져 비명이 나오는 순간에 이를 악물고 몸부림치다가도 하나님에게 악다구니를 쳐댔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러는 건데!!! 나한테 어쩌라고 이러는 건데.... 그냥 죽을병에나 걸리던가. 왜 나한테 이런 병이 생긴 건데!! 왜 다들 나한테 그러는 건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고.


나는 그냥 미친년 그 자체였다.


피부는 뜨거운 고데기로 지지는 듯하며, 불에 달군 드라이버로 관절 마디마디를 깊게 쑤셔 돌리고, 오함마로 뼈를 내리쳐 잘게 가루를 내듯 아파 오는 팔을 잘라내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열댓 번씩 이어지는 기절 탓에(자율신경 실조증 증상) 딸이 너무 놀라 처음엔 119에 신고해 여러 번 병원을 찾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선 딸아이 혼자서 책상의자에 나를 안아 올려 침대로 옮기기를 반복하며 나도, 딸도 함께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딸은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아픈 엄마를 외면하는 가족들이 미웠지만 그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자신과 엄마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가족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때 딸을 위로하고 도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딸을 기르면서 딸에 대해 항상 예민하게 관찰하고 신경 쓰며 도움을 주던 내가 아프니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딸아이에게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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