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픈 것이 내가 받을 벌이라면

딸에겐 무슨 잘못이 있었던 걸까?

by 강나루

친정 쪽에선 첫 손주로 태어난 딸아이를 각별히 사랑했다.

조부모와 삼촌, 이모네와 한동네에 살면서 예절 바르고 순하게 자란 딸이 나를 힘들게 했던 때는 오직 사춘기 겪던 그 순간뿐이었다.(그 당시 사춘기를 심하게 했던 중학교 2학년들은 북의 침공을 막는 대단한 아이들이었어요. 사춘기가 대단했던 중 2 가 무서워 김정일이 남침은 꿈도 못 꾼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거든요.)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을까만 난 딸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엄마였다.


내가 두 번째 희귀 난치병인 CRPS를 확진받고 병세가 깊어지자 내 병간호는 자연스레 딸에게 맡겨졌다.

그때 내게 상황을 분별할 만한 조금의 정신이 있었다면, 우리에게 생긴 돌이킬 수 없는 비극들을 막을 수 있었을까?




가족들이 우리와 연락을 끊는 것을 지켜보며 나보다 더 괴로워했던 사람은 딸 지니였다.

매일 그냥 바라보고만 있기에도 괴로운 엄마의 고통을 돌보며, 가족들이 우리에게 했던 일들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딸은 점점 지쳐갔다.

엄마를 돌보는 것도 모자라 아빠가 하는 일을 돕고, 살림까지 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딸은 잠시도 쉴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독한 수면제에 취해 돌아다니며 기절하는 나 때문에 편한 잠에 들 수도 없었다.

그 모든 걸 홀로 감당하며 가장 힘들어했던 건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가족들의 외면이었다.

엄마를 함께 간병해 주길 바란게 아니었다.

엄마를 간병해야 하는 걸 당연하다 여긴 딸이 바란 건, 가족들의 따듯한 위로와 공감이었다.

지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함께 살며 방관자처럼 구는 아빠와, 아픈 엄마를 모른 척하는 사랑했던 가족들의 외면은, 딸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었다.




딸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걸 알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오랜 간병에 지친 몸이 보내는 신호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다. 아는 병원에서 진료를 본 후, MRI 검사를 해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어도 큰 병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야 옳을까.


그로부터 몇 달 후 딸이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내게 했다.

그제야 놀란 마음을 안고 딸을 입원을 시키고 정밀 검사를 받아 보게 할 만큼 그때의 난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하나뿐인 자식의 미래와 건강을 담보 잡은 난 나쁜 엄마였다.

딸이 아프다는 소식은 남편을 통해 친정으로도 전해졌다. 내게 모든 연락을 끊었던 친정 식구들의 얼굴을 1년 반이 지나 딸이 입원한 병실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나를 본 친정 엄마의 첫마디는 아버지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라는 말이었다.

오빠와 여동생은 그저 딸을 챙기지 못해 미안해하는 것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인 듯 행동했다.

오래도록 심하게 아픈 내 안부 따위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모든 것이 사무치도록 아프고 슬펐다.

하지만 그때 중요한 건 내가 아니었다. 내 설움은 나중에 얘기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가족들도 등을 린 나를 유일하게 정성을 다해 간병하던 딸이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를 버린 게 확실하다고 믿은 하나님께 다시 매달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정말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가 가족들에게 몹쓸 짓이라도 저지른 게 아닌가 생각을 거듭하기도 했다.

내가 아픈 것이 그런 내 잘못에 대한 벌이라면 딸에게 생긴 병까지 모두 내가 떠안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퇴원을 하고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 딸은 어떻게든 나를 떼어놓고 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많이 아프고, 여러 가지 통증에 시달려 제정신을 차릴 수 있는 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해도,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병이 생겼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절대 딸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아이는 진단명을 들으러 간 신경과 진료실 앞에서 수시로 기절하는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여느 때 보다 담담한 척 견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어떤 얘기를 듣더라도 아이 앞에선 울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 다짐은 지킬 수는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결과를 들으러 들어간 진료실에서, 담당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내 가슴을 찢어발겼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게 뇌 MRI사진입니다. 여기 가운데 중심으로 옆에 하얗게 퍼져있는 반점 보이시죠.

이게 병변이에요. 이 병은 MS(다발성 경화증)라고 합니다. 증상으로 들었을 땐 초기 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병변이 많이 퍼져 있네요. 중기 정도로 진행된 상태입니다.

뇌에 병변이 한번 생기면 없어지진 않습니다. 진행만 늦출 수 있습니다.

증상으론 시신경에 염증이 생겨 실명하게 되거나 팔, 다리가 마비되거나, 마지막엔 전신마비까지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진행이 좀 된 상태라서 치료제를 어떤 걸로 선택할지 상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완치 방법은 없지만 약 만 잘 맞으면 진행 속도를 현저히 줄일 수 있으니 너무 낙담하진 마시고 치료해 봅시다.

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뜨거운 덩어리 같은 울음과 함께 힘겹게 삼켜야 했다.

일그러지는 얼굴도 억지로 잡아 펴는 것처럼 안간힘을 써 붙잡아야 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딸의 얼굴은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눈물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아이는 소리 내 울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진료를 보고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딸은 고개를 숙이고 내 휠체어를 밀어 주차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한참 동안 차 안에 앉아 출발하지 못한 채 주차장에 머물러야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딸에게 말을 건넸다.

지니야. 걱정하지 마. 네 병은 엄마 병이랑 달라.

지금은 놀라고 정신없어서 힘들겠지만 엄마가 항상 곁에 있을 거야. 절대 너 혼자 앓게 두지도 않을 거야.

벌써 오래전에 알려진 병이고 연구도 많이 된 병이야. 그리고 연구 많이 진행돼서 완치까진 안 돼도 진행을 멈추는 약은 금방 개발될 거야.

엄마가 약속할게. 꼭 나을 거라고. 희망 가지고 치료하자.

엄마가 너한테 한 약속 한 번도 안 지킨 적 없잖아. 그렇지? 힘내자...


지니는 대답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런 딸을 안으며 나도 같이 울었다.

우리는 계속, 계속 울었다.

온몸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우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불치병에 걸린 엄마를 불치병에 걸린 딸이 간병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역경에 짓눌려 가고 있었고 그 어디에도 한때나마 내가 믿었던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 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욥 7:20 (개역개정)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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