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위한 노력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해지나?

by 강나루

브런치 작가에 선정이 되고 지난 투병 시간들부터 자살 사고까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다시 공고해졌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이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내게 생긴 문제가 내 인생에 운명처럼 정해진 일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모든 걸 하나님의 부재 탓으로만 여기고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다시 공고해지면서 내 마음에 가장 힘들게 매달려 있던 키워드는 용서였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비열한 순간은, 상대가 가장 연약하고 힘들어졌을 때 등을 돌리는 것이다.


두 번째 희귀 난치질환을 선고받고 이사를 준비하던 때, 나는 남편으로 인해 전세 보증금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그 문제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3년이나 지난 후였다.

이사를 앞두고 친정아버지께서 보태주신 돈이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남편은 뒤늦게 말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불안한 마음에 열 번도 넘게 물었고, 그는 매번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들 역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병든 나를 부담스러워했든, 혹은 내게 무언가 실망한 지점이 있었든, 각자의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없이, 마치 존재 자체를 지우듯 연락을 끊은 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간병을 요구한 적도, 병원비를 부탁한 적도 결코 없었다.
그저 몸은 어떤지 묻는 안부 전화 한 통이면 충분했을 텐데.

필요할 때마다 나를 부르던 사람들은, 내가 쓰러지자 조용히 등을 돌렸다.

그 후 남편은 모든 상황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보았고, 자살 사고가 있기 전까지 나는 가족들이 그랬던

이유라도 알고 싶어 애써 연락을 시도하곤 했다.

사고 직전, 아버지께 다른 가족들과 한 번만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말씀드렸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내가 예전에 말해봤다. 네가 아파 예민해서 그러는 거니까 좋게 풀라고 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더라. 또 말했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니.
이제껏 참았으니… 그냥 네가 참는 김에 조금 더 참는 게 좋겠다.

그 말 앞에서,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우리 가족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는 것을.

집안이 조용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내게 기대던 오빠가 더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집안에서 제일 잘 나가는 막내딸의 면피를 위해서는 나는 그냥 무조건 참아야 했던 거였다.

내가 아무리 희귀 난치병 두 가지와 난치성 질병 두 가지 그리고 그 외 합병증과 부작용등 20여 가지의 병으로 10년 동안 혼자서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는 중증 만성 질환자였어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간병하느라 자신의 앞길을 저당 잡히고 자신도 희귀 난치 질환(MS-다발성 경화증)을 얻게 된 조카를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탕감받고 싶기라도 한 듯 10년 동안 나를 모른 체하며 딸 지니에게만은 간과 쓸개를 모두 내줄 듯 살갑게 굴었고,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씩 외가에서 만나는 모임에서 아이는 큰 위안을 얻는 듯했다.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운 법이다. 딸도 언젠간 그들에게 상처를 받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주중에 내내 고통과 싸우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가 쉴 곳이 필요한 걸 알았기에 그들과의 만남을 쉽게 말릴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어렸어도 아이는 이미 성인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내가 말렸다면 오히려 나와 의견차이만 벌어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우리에게 벌어진 일은 나와 형제간에 생긴 일이었다.


그때 알았다.

우리 가족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는 것을.

집안이 조용해야 했고, 부모님의 체면이 우선이었으며, 늘 내게 기대 살아온 오빠가 더 안쓰러웠고, 집안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막내의 체면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균형을 위해 그냥 조용히 참고 사라져 있어야 했던 사람일 뿐이었다.

비록 내가 희귀 난치병 두 가지와 난치성 질환 두 가지, 그리고 합병증과 부작용을 더해 스무 가지가 넘는 병으로 10년 동안 집 밖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중증 만성 환자였어도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길을 저당 잡고 나를 간병하다 병(MS-다발성 경화증)을 얻은 조카를 통해, 모든 잘못을 면죄받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향해 묵묵부답이었던 10년 동안, 딸에게만은 지나칠 만큼 살가웠다.
그 아이가 외가에서 위로를 얻는 듯 보일 때마다, 나는 기쁘면서도 참 슬펐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외면한 관계는 두 번째가 더 쉽다.

딸 역시 언젠가 상처를 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중 내내 고통과 싸우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쉴 곳이 필요하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그 선택을 막았다면, 오히려 우리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을 것이다. 아이도 이미 성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애가 다치지 않기를 조용히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결국 이 일은 나와 형제들 사이의 일이다.
그 불씨가 우리 아이에게 번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내게 찾아온 정신적 고통(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해리, 기억 상실, 공황 장), 이 모든 시작은 남편과 가족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한동안은 남편이 퇴근해 문을 여는 소리만 들어도 숨이 가빠져, 불안장애 약을 손에 쥔 채 하루를 버텼다.
지금도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내가 투병하는 동안 남편은 아이가 나를 간병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장의 역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딸은 외가에 다녀온 얘기를 내게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한 가지 얘기를 전해 주었다.

새언니와 큰 조카가 성당을 다닌다는 얘기였다. 내가 새언니와 첫 조카에게 어떻게 해줘 왔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오빠나 동생에 못지않게 내 맘에 큰 상처를 남긴 두 사람이었다.

내가 용서하지 못했는데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셔도 되는 건가?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울분과 화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가족들의 얘기를 꺼낼 수 조차 없었다. 매일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해도 번번이 눈물은 폭포같이 쏟아졌고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자살사고 후 2~3년 동안은 자살을 시도했던 그 시기가 다가 오기만 해도 자지도, 먹지도 못할 만큼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수명이 줄어드는 듯한 극한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렇게 사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성경에서는 용서에 관해 여러 번 말씀하신다.


*골로새서 3:13 “누가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서로 용서하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리라. 그러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요한 3서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너희 죄가 사함을 받았음이라.”

*시편 103:10-12 “그는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리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며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느니라.”


성경은 용서를 명하시고, 하나님의 자비가 죄를 덮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회개에 대한 말씀도 자주 등장한다.


*누가복음 17:3-4 “조심하십시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꾸짖어라. 그가 회개하면 그를 용서하십시오. 그가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그를 용서하라.”

*시편 32:5 “내가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주님께 내 범법을 고백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당신은 내 죄악을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그를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회개에 대한 말씀도 이보다 더 많지만 하나님은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며 돌아온 자에겐 용서라는 자비를 베푸신다.


다만 한 가지, 용서의 행위가 용서를 받은 상대방의 태도에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 계속 나를 붙잡아서 내가 그 일에 희생되게 허락해서는 안 된다.

분노와 그 분노를 격발 한 사건과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사건과 그 사람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용서는 자신의 행복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리고 살다 보면 알게 되지만 인생은 부메랑이다.

나를 힘들게 한 모든 일들, 내게 상처를 준 가족들... 언젠가는 내가 겪은 만큼의 고통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내가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고 원한다.

지금은 비록 용서하기 어렵다 해도 잊고 살 수 있기만 해도 된다.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주실 것을 믿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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