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들으면 서운할지 모르지만 딸과는 다른 느낌이다. 자신의 젊은 날들을 다 희생해 가며 아픈 보호자를 챙기고 그림자처럼 붙어 내 모든 순간에 함께 한 콩이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큰 위로이자 위안이었다.
오랜 투병 기간 동안 가장 힘든 시간을 말하라면 수도 없는 고통의 순간들이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이 다 잠들어 있는 깊은 밤 홀로 잠들지 못하고 통증에 매여 있을 때가 가장 힘이 들었다. 그 시간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시간이었다. 누군가 돌봐주는 이 없이 홀로 고통에 잠겨 있다 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유혹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지켜 준 것이 콩이었다. 불면증이 심한 내가 수면제를 먹고도 잠이 들지 못해 뒤척이고 돌아다니면 콩이 역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콩이가 아니었다면 내가 얼마나 많은 자살 사고를 냈을지 가늠할 수도 없다.
밤시간뿐만이 아니었다. 자율신경 실조증의 증상으로 기절이 잦았던 나를 그냥 바라볼 수만 없던 콩이는 그림자처럼 졸졸 쫓아다녔다.
그 덕에 큰 위기를 여러 번모면했었다. 내가crps의 돌발통이 오기전이나 기절직전의 전조증상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때에 콩이는 똑바로 일어서 내 다리를 긁으며, 뒤로 밀어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 최악의 상황을 모면토록 한 게 수백 번이 넘는다. 또 누나가 없는 사이 내게 일이 벌어지면 누나를 불러와 신속하게 후처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만도 역시 수백 번이다.
내가 아프자마자 등을 돌렸던 어떤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으로 나를 지키고 보호하며 충직하게 내 곁을 지킨 게 콩이였다.
지난여름,콩이는 갑상선 기능저하 증후군과 아토피 피부염도 모자라 항문낭염으로 극한의 고통을 겪었다. 그런 콩이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다.
어릴 때 중성화 수술 이후로 식욕이 떨어져 원체 입맛이 없던 콩이는 독한 약을 먹으며 그나마 조금씩 먹던 식사마저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틀에 한 끼를 먹으며 연명했다. 그나마도 어르고 달래야 평소에 먹던 한 끼 분량의 반 정도나마 간신히 먹었다.
속이 타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아무 음식이나 먹일 수 없어 콩이는 금세 야위어 갔다. 먹지 못하니 볼품없이 말라가는 건 둘째치고 약에 휘둘리며 점점 더 멍해지는 시간이 늘어갔고 뒷다리에 근육이 너무 빠져 제대로 서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나는 나대로 고통스러운 밤이 힘에 겨웠고 아픈 콩이를 케어하는 일이 벅차기 시작했다.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심하게 긁으며 독한 약에 휘둘린 체 염증으로 고열에 시달려가며 콩이는 순간순간 자신을 놓쳐갔다.
그런 콩이를 보며 생각했다.단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적으로 구는 법도 없이 묵묵하게 자신에게 찾아온 병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콩이지만 영문 모를 고통이 힘에 겹지는 않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그만 내려놓고 싶지는 않을까?
7월의 어느 더운 여름밤, 새벽 4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하고 거실과 안방, 온 집안에 각질을 흩뿌리고 다니며 미친 듯이 긁고 있는 콩이를 덥석 안아 들며 콩이에게 물었다.
콩이야, 많이 힘들지? 이제 그만할까? 엄마가 이제 너 보내줄까? 못 견디겠으면 가도 되는데...
아니다. 내가 미친년이다. 콩이가 내게 어떤 아이인데... 콩이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을 꺼내자마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순간일 뿐 잠시나마 안락사를 생각하고 아이에게 그런 말을 건넨 것이 못내 미안했다.난 못나고 어리석은 보호자다.콩이는 단 한 번도 내게 등을 보인적이 없었는데.
콩이를 안은 채 침대로 들어와 잠자리에 눕히곤 가려워하는 곳들을 살살 두드려 가며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콩이야. 어서 자자. 오늘 밤만 잘 넘겨보자. 그렇게 내일도 내일의 밤을 잘 넘기고 또 그다음 날의 밤도 잘 넘기다 보면 좋아지는 날이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