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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Nov 11. 2024

강아지 다워지기

반려견과 가족으로 사는 법

일 년 가까이 호되게 고생했던 아토피 치료가 어느덧 자리를 잡아 콩이의 컨디션이 많이 회복하긴 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10월 초순만 해도 거의 다 나은 것 마냥 기력도 되찾고 밥도 잘 먹던 콩이였다. 하지만 겨울을 앞두고 일교차가 심해지고 추위가 다가오려 하자 금세 몸에 각질이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 한동안 약만 처방받으려 병원을 다녔는데 다시 진료를 보고 항생제를 처방받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콩이나 나, 그리고 딸까지 힘든 투병이지만 이렇게 라도 다스려가며 모두 잘 지냈으면 하는 게 무엇보다 간절한 소망이다.




사실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지난 10년간 콩이는 강아지 답지 않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 누가 가르치거나, 유도하거나 강요한 적은 없다. 콩이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아픈 나를 간병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콩이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앓고 있는 희귀 난치병들은 모두 심한 통증을 동반한 병이다. 온몸에 불이 붙은 듯 끔찍한 작열통을 일으키는 crps 돌발통이 그렇고 소름 끼치도록 아픈 베체트의 관절통과 온몸을 때려 맞는듯한 섬유 근육통의 통증, 그리고 구역과 구토, 시야 장애를 동반한 미칠 것 같은 난치성 두통이 그렇다. 그래서 모든 약들이 독했고 마약 진통제도 많아 초기에 병을 앓기 시작했을 땐 약으로 인한 섬망 증상도 심했다. 이런 보호자를 바라보며 콩이는 두려움에 떨기만 하 않았다. 스스로 엄마를 지키고자 마음을 먹 가 기절했을 때 누나에게 달려가 알 누나를 내게 데려, 통증에 이를 악물고 신음을 뱉으며 몸을 비틀고 있으면 누나의 방문을 긁어 내가 아픈 것을 알다.

콩이가 없었다면 확실히 더 험난한 투병생활을 보냈을 거란건 자명한 사실이다. 

통증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외부 요인들로 인해 난 해리성 장애와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등을 으며 해리성 기억상실과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었고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지키느라 콩이는 강아지 다운 삶을 살기 어려워졌다. 아픈 내게만 매달려 노는 법을 잊었고 누나와 하는 산책에 미를 잃어갔다. 그저 내 옆에 엎드려 누워 아픈 엄마를 지키는 것이 콩이의 유일한 일상이 되고 만 것이다.


자율신경 실조증의 증상으로 하루에도 십 수 번씩 기절하느라 휠체어 없이는 외출을 꿈꿀 수 없었다. 게다가 입원을 앞두고 욕실에서 넘어져 발목이 골절된 후로 팔에만 있던 crps가 다리로 번져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는(crps로 재활을 할 수 없었어요) 다시는 콩이와 산책할 수 없을 거라고 포기하고 말았다. 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고 끔찍하기만 한 세월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나대로 폐인이 되어가고 콩이는 콩이대로 나이가 들어가 이대로 세월을 흘려보내는 게 아닌가 싶을 때 '나쁜 개는 없다-효자견 콩이의 엄마 간호 일기'에 출연해 우리의 사연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촬영날 제작진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탄  콩이와 함께 산책을 하게 됐다. 그 산책이 막막했던 내 일상을 탈출할 트리거가 됐다. 너무 벅차고 행복했다. 많이 아프고 힘든 가운데에도 콩이와 산책할 수 있기를 바라 소망을 마음에 품었다.


그리고 지난 3년 간 걷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다.

잘못 만지면 바로 돌발통이 생기는 crps 때문에 발목의 재활을 병원에서 할 수 없었다. 조각이 많이 났던 발목뼈를 고정한 나사를 빼는 수술을 하기도 어려웠다. 재수술을 포기하고 걷기 위해 나름대로 플랜을 짜서 홀로 열심히 재활 운동을 했다. 다행히 자율신경 실조증의 상태도 많이 좋아져 기절의 횟수가 줄어들고 처음엔 5분 정도에 지나지 않던 산책의 시간이 2~30분으로 늘어났다. 아직은 오랜 시간을 걷지 못하고 정비가 잘된 평지만 걸을 수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만하기만 한 것도 내겐 축복이다. 콩이와 난 올여름에 찾아온 잔혹했던 혹서를 지나고 가을을 맘껏 만끽했다.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비록 많이 늦었지만 내년엔 그동안 꿈꾸던 바다 여행을 함께 하리라 마음먹는다.

콩이는 산책도 노즈워크 위주로 얌전히 해요. 아픈 엄마를 배려하는 콩이가 너무 고마워요♡




나보다 10여 배는 빠르게 흐르고 있는 콩이의 시간을 고 싶다. 젊은 날의 시간을 온통 내게 쏟아부어준 콩이의 남은 여생이 얼마 일진 모르지만 그 시간이 온통 충만하고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이미 지나버린 세월, 한탄만 하기에는 너무도 아쉽고 안타깝다. 남은 세월 동안 어찌해도 미련과 후회가 남겠지만 그래도 못 해본 일은 없었다 말할 수 있도록 콩이와 함께하는 많은 일들을 하려고 한다.


오늘도 콩이와 함께 즐겁게 터그 놀이를 했다. 강아지임을 잊고 살던 콩이가 얼마 전부터 다시 터그 놀이를 시작했다. 함께 놀아주고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나의 늙은 강아지 아들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봐주며 아껴주고 행복해하는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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