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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by 윤오순

일본엔 자발적으로 증발해 숨어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숫자가 1년에 10만이 넘는다고 한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와 사진작가가 이런 사람들을 취재해 엮은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인간증발>이란 타이틀로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도 하루아침에 그렇게 사라졌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료 도움도 많이 받았고 그렇게 받은 자료 중에 책 세 권이 있는데 무게가 13kg이 넘는다. 그사람은 내 연구영역 한 섹터에서 확실히 앞선 한 사람이었다. 박사학위 눈문을 쓰기위해 그사람의 조사지역보다 200킬로미터 정도 더 떨어진 곳에서 조사를 했는데 버스를 타고 그사람의 조사지를 지나칠 때마다 여기도 왔었단 말이지, 라며 생면부지의 그사람을 떠올리곤 했었다. 학위를 먼저 받았고 논문을 내 한국집으로 보내주기도 했었다. 가끔 드롭박스 패스워드를 알려주며 필요한 자료 있으면 다운로드하라고 할 때도 있었는데 나 같은 미개척 분야 연구자한테는 축복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만난 적도 없이 그사람과는 온라인으로만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부터 메일이 반송되었다. 주변 지인들한테 물어봐도 다들 모른다고 했다. 일본 한 대학의 초빙교수로 갔을 때 그사람을 좀 찾아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다들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고 대수롭지않게 이야기해 놀랐었다. 아마 매년 사라지는 10만명 중 하나로 그렇게 증발해버렸나보다.


서재 정리하다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13kg 상당의 책 앞에서 이제 다시는 만날 기회조차 없이 증발해버린,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떠올랐다.


#인간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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