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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님이 어때서요

by 윤오순


20년쯤 친분을 이어가는 분이 있는데 어제 우연히 그분의 나이를 알게 되었다. 그분은 이미 내 나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고. 나보다 네 살 위인 분이셨다. 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개인사를 잘 안 물어보는 사람이고 실제 그런 게 궁금하지않아 묻지않는 건데 그걸 서운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알고지낸 시간이 20년쯤 흘렀지만 그분의 이름과 직장 이외에 그분의 직책이 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처음 그분 직장 일로 만났고 그간 그분의 직장이 있는 건물 근처에서 만날 일이 가끔 있었다. 그리고 이유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만난 날부터 그분의 직장에서 직책이 아닌 ㅇㅇ씨로 부르는 관계가 되었고 그런 호칭관계는 어제까지 ‘잘’ 이어졌다.


그분은 내가 아무런 경계없이 만날 수 있는 분이고 아무 주제나 주저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이기도 하다. 누가 그분이랑 친하냐고 물으면 나는 친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분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우린 식사가 포함된 만남을 꽤 많이했고 만나면 물흐르듯 대화가 이어져 자주는 안만나지만 만날 기회가 생기면 튕긴(?)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유학시절 한국에 오면 초치기 일정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 빠지지않고 만나야할 사람 리스트에 있는 분이었다.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않고 조용히 같이 산책을 할 수 있는 분이고 어떤 사안이 있을 때 그 사안과 관련해 난 제법 그분의 행동이나 대답을 예측할 수 있다.


어제 나와 그분을 ‘언니’라고 부르는 동행이 있었는데 이야기 도중에 호칭문제가 나왔다. 나보다 네 살 위인 그분이 갑자기 본인을 왜 ‘선배’도 ‘언니’도 아닌 ‘ㅇㅇ씨’라고 부르는지 불만이라면서 이제부터 위 세 가지 호칭 어떤 걸로도 부르지말고 대화를 잘 이어가라는, 몹시 어려운 주문을 했다. 같은 학교 대학원을 한 해 일찍 들어갔으니 선배가 아닌 건 아닌데 내가 학교를 중간에 그만둬서 그 학교와 얽히는 게 싫었고 그래서 ‘선배’라는 호칭을 기피했던 것 같다. 게다가 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언니나 오빠같은 가족관계 호칭으로 부르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라 ‘언니’는 부를 수 없는 호칭이 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그분 가톨릭 세례명이 ‘스텔라’라는 사실이 갑자기, 그것도 어제 밝혀졌고, 스텔라는 ‘별’을 뜻하니 그분을 앞으로 ‘별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별님’은 선배나 언니, ㅇㅇ씨에 해당되지 않으면서 나한테는 입에 촥- 붙는 호칭이었지만 내 은근한 ‘별님’ 호칭에 두 사람은 박장대소를 했다.


#별님이어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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