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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 이야기

by 윤오순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의 마지막 부분으로 선생은 아사코와 세 번에 걸친 만남과 이별을 그렇게 추억한다.


일본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기쿠지 간의 단편 <어떤 사랑 이야기 ある愛の話>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직업이 작가인 화자와 아내의 외할머니가 돈독히 지내면서 그녀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독특한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내의 외할머니는 가부키 배우의 현실 속 모습에는 몹시 실망하지만 무대 위 배우로서 역할을 절절히 사랑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도를 떠나게 된 배우의 간절한 요청으로 둘은 결국 만나게 된다. 결론은? 피천득 선생이 추억하는 아사코처럼 둘은 차라리 아니 만났어도 좋았을 인연으로 마무리가 된다.


때로는 그렇게 인연이 아닌 인연이 있는 것이다.


*사진: 영화 ‘건축학개론’ 한 장면


#어떤사랑이야기 #기쿠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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