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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배낭여행

by 윤오순

A: 안녕하세요. 이 주소로 가 주세요.

B: 여기 꽤 먼데….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가요?

A: 거기 맛있는 커피 파는 카페가 있대요.

B: 얼마나 맛있는 커피길래 택시를 타고 거기까지 가서 마신대요?

A: 그러게나 말입니다.


(A는 나고 B는 택시기사님.)


2만보를 넘게 걷다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어 인터넷을 뒤졌는데 가고 싶은 카페가 걷기에는 너무 멀어 택시를 탔다. 문화해설사 포텐셜이 넘치는 기사님은 지나가는 길에 그 지역에 대해 별별 것들을 다 설명해줬다. 뜬금없이 이순신 대교를 설명하면서 그 다리를 대림건설이 만들었는데 총길이가 1,545m라고 했다. 실제 본인이 택시를 타고 가서 길이를 쟀는데 거짓말 아니고 1,545m였다면서 (거의 침을 튀긴 것처럼 느끼게) 흥분을 하며 정말 온갖 것들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다리 길이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라서 그렇게 만들었다는데 의사결정자 그룹 안에 역사 덕후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도착한 카페는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택시를 보낼까 아니면 다시 타고 돌아갈까 짧게 망설이는 순간 문화해설사 포텐셜이 넘치다가 결국 터져버린 기사님이 내게 뜬금포 제안을 했다. “마스크 때문에 실망한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분명 실망을 많이 한 것 같아 내 맘이 좋지 않은데 여기서 조금만 택시를 타고 가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섬이 하나 있어요. 혹시 관심이 있으면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난 그런 곳을 좋아하는데 손님이 그런 곳을 좋아할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시러 택시를 탈 정도면 거기를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튼 일단 가면 실망은 안 할 거예요.” 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사진의 저 섬이었다.


기사님은 친절하게 자신이 섬을 방문했을 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화살표를 따라가면 좀 심심하다고 다른 길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 사진들이 나오는 곳이 보이면 제대로 가고 있는 거니 의심하지 말고 바다가 보이는 둘레길을 따라가며 풍경을 맘껏 즐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섬 주변은 택시 잡기가 어려운 곳인데 10분 이내에 근방에서 콜이 들어오면 손님이 섬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일 테니 바로 달려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택시는 거길 떠났다.


마치 텅 빈 느낌의 이상한 섬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바다도 있고, 기사님이 이야기한 둘레길도 있고, 작은 규모의 갤러리도 있었다. 맛있는 커피는 없었지만 다 좋았다. 도박하는 심정으로 섬에 들어갔는데 텐배거 주식을 산 느낌이었다.


#오랜만에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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