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저는 에티오피아 커피 투어리즘을 연구하는 박사과정 학생으로 아라비카 커피의 발상지인 에티오피아 서남부의 카파(Kaffa) 지역에서 필드워크를 진행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미국 피스코 봉사단원인 척(Chuck)을 만났고, 우리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나무를 찾아 카파의 깊은 숲을 함께 여행했습니다.
그 시절은 정말 마법같은 시간이었고, 이후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가끔 그때를 떠올릴 때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척이 그 당시 여행에 대해 쓴 블로그 포스트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저는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카파의 울창한 숲 속에서의 하이킹, 우리가 나눴던 대화, 그리고 가장 오래된 커피나무 앞에 섰던 그 기억까지… 이 내용은 얼마 전 여기에 포스팅을 했으니 참고해주세요.
링크: https://brunch.co.kr/@osnyoon/400
저는 척의 블로그 포스트를 여기에 공유하며 그 시절을 회상했지만, 글을 올린 후에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몇 번의 클릭을 통해 그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냈고, 그에게 반가운 마음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놀랍도록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몇 번의 클릭만으로 과거에 알던 사람을 다시 찾을 수 있죠. 그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낸 후, 저는 그가 쓴 블로그 글이 얼마나 제게 의미가 있었는지 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척으로부터 긴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그의 답장에는 제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카파에서 함께 했던 모험과, 긴 하이킹 후 제가 그와 그의 친구 로라에게 대접했던 한국 음식까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저는 지금도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습니다. :) 아무튼 메시지에는 그의 따뜻한 기억들이 가득했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 척은 카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영어와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부쿠레슈티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반가웠습니다. 그는 저를 부쿠레슈티로 초대했지만, 저는 그와 다시 만날 기회는 아마도 카파가 더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동료들과 함께 가끔 카파를 방문한다고 말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부쿠레슈티는 제게 또 다른 뜻밖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오랜 친구인 크리스티나가 루마니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몇 년 전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크리스티나는 6개월 과정으로, 저는 8개월 과정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여러 수업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일본에서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종종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도서관 업무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브쿠레슈티 거리의 유기견들이 무섭다며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그 친구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몇 번이나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고,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척과 다시 연결되면서 마치 운명이 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메일로 혹시 시간이 된다면 부쿠레슈티 국립중앙도서관에 들러 크리스티나를 만나볼 수 있을지 물어보았습니다. 직접적인 연락은 아니지만, 그녀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척과 다시 연락이 닿고, 크리스티나를 떠올리며 저는 오늘날 우리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물질적 성공을 쫓는 데 쓰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좋아요와 조회수, 돈이 얼마나 많은지로 우리의 가치를 측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요 며칠 경험했던 이런 ‘짧은 순간’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부’를 상기시켜 줍니다—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나누는 이야기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이어지는 인연들 말이죠.
척의 따뜻한 이메일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고, 이런 일들은 나 혼자만 알고 있을 게 아니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는 카파의 명소 중 하나인 ‘천연 다리’ 사진도 함께 보내 주었습니다. 이곳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 구조물로, 얼핏 동굴처럼 보이지만 현지 사람들은 분명 ‘다리’로 부르는 곳이며,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천연 다리처럼, 우리가 인생에서 쌓아가는 연결고리들은 시간이 지나도 늘 견고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다가 우리가 다시 건널 준비가 되었을 때 ‘다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물쭈물하지말고 다시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든, 과거에 당신을 도와준 멘토든,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의미 있었던 누군가든, 그들에게 마음을 담아 연락해보세요. 잠깐의 연결시도가 그들이나 당신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다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최근 들어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저처럼 메모를 남기고, 추억을 공유해보세요. 인생은 우리가 달성하는 성과나 벌어들이는 돈만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우리 인생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관계와 나누는 이야기들, 그리고 남기는 사랑으로 언제나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인데 가끔 크게 용기를 내서 잊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할 때가 있고 뜻밖의 인연으로 연결될 때가 많았습니다. 부쿠레슈티의 크리스티나가 무사히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오래된 친구들과 다시 연결된 경험이 있나요? 저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제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 2024년 1월 EBS 세계테마기행 <나는 전설이다 에티오피아> 편을 감상하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총 4부작 중 카파를 소개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거기에 척과 제가 방문했던 오래된 커피나무 숲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어요. 유튜브에도 영상이 올라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qUzvjN-ficc?si=a0f4Lnp-qLznuY0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