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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표현하지 않고 뚱할 때

by 윤오순

평소 난 좀 뚱하고 표현을 잘 안해서 전형적으로 재수없는 유형의 캐릭터인데 좋은 것, 맛있는 것, 예쁜 것, 멋진 것, 잘 만들어진 것 등 아무튼 내게 특별한 것을 만나면 수선스러워지고 호들갑스러워진다.

음식도 맛있으면 계산하고 나올 때 정말 맛있었다고 표현하고, 맛있지만 그릇을 비우지 못할 땐 음식 탓이 아니고 내 개인 탓임을 꼭 표현하고 나온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에 세팅이 잘된 음식이 보이면 놓치지않고 “맛있겠어요.”, “맛있을 것 같아요.”라는 댓글을 남기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지만 일단 만나면 그 사람의 장점을 귀신같이 찾아내 칭찬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건 아첨도 아니고 사실 어떤 사람이라도 장점이 없을 순 없지 않나.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 만나면 눈에서 꿀 떨어지는 표정으로 잘 생기셨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어요, 같은 표현을 잊지 않으니 본인이 미남미녀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 :-)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데 난 그동안 여러 조직을 거치며 다양한, 그렇지만 주로 전문적인 일을 할 기회가 많았다. 그런 귀한 경험을 통해 조직에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 올 때 그가 가진 장점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든 본인보다 부족한 걸 귀신같이 찾아내 그걸 또 굳이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새로운 구성원이 조직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해 언젠가는 본인들에게도 혜택이 있을, 새 구성원의 보유 기술이나 잠재성에는 관심이 없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새로운 구성원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도 인색한 경우가 많다. 내 경험에 의하면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받아들여서일 경우가 대부분인데 번아웃이 될 때까지 버티거나 결국 떠나는 것 말고는 해결방법이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종교인 친구에게 비슷한 일로 조언을 구했더니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호랑이 사냥꾼이 토끼 사냥꾼 그룹에 들어갔을 때 토끼 사냥꾼들 대부분은 호랑이 사냥꾼이 현재 가진 기술이나 능력, 과거에 그가 때려잡은 호랑이 이야기, 앞으로 호랑이를 잡을 전략이나 도구 등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단다. 일단 토끼 사냥꾼들은 호랑이 사냥꾼의 세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상상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지금도 충분히 토끼 사냥을 잘 하고 있기 때문에 호랑이 사냥꾼의 무용담이나 전략, 전술, 특이한 무기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혹 토끼 사냥꾼들 중에는 호랑이 사냥꾼 앞에서 자기의 토끼 사냥 경험이나 전술을 자랑하며 호랑이 사냥꾼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베스트 방법은 본인이 호랑이 사냥꾼이란 판단이 서면 토끼 사냥꾼들 주변에서 얼쩡대며 시간낭비 하지 말고 본인과 스펙이 맞는 동료 그룹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비로소 성장과 발전이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네팔에서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 전문가로 일할 때 강진을 경험했는데 일본 유학시절의 진도 5, 6의 지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과 공포 그자체였다. 이렇게 내가 갑자기 자연재해 앞에서 인생을 마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매사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그 일환이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친절한 태도였다.

친구의 호랑이 사냥꾼 에피소드가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냥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고, 그러다보니 좋은 것, 맛있는 것, 예쁜 것, 멋진 것, 잘 만들어진 것에 해당되지 않은 것들과 대면해야할 때는 난 그냥 뚱하게 아무 표현도 하지 않는 태도를 취할 때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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