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통해 마음의 짐 나누기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타인 또한 내 기준으로 쉽사리 지레짐작하기도 한다. 함께 한 시간이 길수록 누군가를 다 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특히 가족이 그렇다. 나도 내 자신이 할머니에 대해서는 모든 다 아는, 할머니 전문가라고 생각했었다. 할머니와 나눈 수많은 대화 속에 내가 태어나기 전의 가족의 역사나, 할머니의 한, 할머니의 학력, 할머니의 부모님 이름, 할머니의 할아버지, 가족 고향 이야기 등 할머니의 삶의 여정을 이미 한번 머릿속으로 그려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종종 깨닫는다. 내가 아는 할머니, 즉 내가 생각하는 할머니가 할머니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할머니는 시간 맞추는 걸 좋아하고, 또 잘했다. ”대충 5시쯤 됐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 거의 30분 오차 범위 내로 근접했다. 내가 놀라 “할머니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으면, “봐, 할머니 말이 맞지?”하며 뿌듯하게 웃으시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서야 언니가 걸어온 통화로 할머니의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실은 아날로그시계를 읽을 줄 모른다는 걸.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자세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언니가 할머니한테 몇 시나 됐냐고 여쭤봤고, 할머니는 우물쭈물하시며 대답을 얼버무리셨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계속 물어보니까 실은 시계를 볼 줄 모른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할머니가 시간을 맞췄던 것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시계를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한 할머니만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시계를 앞에 두고 몇 시냐고 물으면, 시계를 볼 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 있으니 먼저 시간을 맞춰보는 시늉을 하셨던 것이다.
이어서 아침에는 어떻게 우리를 깨워서 제시간에 학교를 보내셨는지 의문이 들었고, 할머니께서 그건 텔레비전이 있어 가능했다고 알려주셨다. 아침 방송엔 왼쪽 상단에 시간이 표시되어 나왔기 때문에 그 조그만 숫자를 보고, 등교 시간을 맞추실 수 있었다는 것.
할머니의 소소한 비밀이 알려지자 할머니는 특유의 머쓱한 웃음을 지으셨다. 퍼즐이 맞춰지듯 떠오른 또 하나의 장면은 우리 집 방에 빨간 불빛이 강한 전자시계를 들여다 놓았던 일. 빨간 불빛이 방안을 정육점 빛깔로 만들며 수면을 방해했지만, 할머니는 이 불빛이 있어 새벽에 일어날 때 안 넘어질 수도 있다고 전자시계를 고수하셨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불빛은 핑계고, 우리가 없을 때도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전자시계가 꼭 필요하셨던 것 같다. 나중에 빛이 강하지 않은 작은 전자시계를 들여놓자 몇 번이고 마음에 드신다고 하셨던 것도 불빛 핑계를 대긴 하셨지만 실은 시간이 숫자로 표기되는 디지털시계가 필요했었던 거라는 방증이겠지.
비밀이라기엔 거창하지도 않고, 작은 반전 같았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만한 일이지만, 할머니에겐 이게 어떤 의미였기에 이토록 오랜 세월을 감춰오셨는지, 고등학교 졸업이 당연한 시절에 태어난 나는 잘 가늠이 되질 않았다. 느리지만, 글자 쓰고 읽을 줄 안다는 것을 할머니께서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날로그시계를 볼 때면 가끔 할머니의 오랜 세월의 전전긍긍이 떠오르곤 한다.
이제 할머니는 아날로그시계를 굳이 볼 필요가 없어졌다. 할머니에게도 휴대폰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간을 알고 싶으면 이제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휴대폰을 열고 시계를 확인하고, 우리가 집에 돌아올 때가 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하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또 살면서 어떤 몰랐던 사실과 생각들을 알게 될까. 할머니의 어떤 새로운 모습들을 알게 될까. 할머니를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짐작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그러지 않기 위해 또 할머니께 말을 건다. 이미 수차례 들은 이야기일지라도 미묘하게 달라지는 소소한 변화들을 발견하며, 잊지 않기 위해 또 적는다. 할머니가 혼자만 꽁꽁 무겁게 들고 있는 마음의 짐을 나눠 들 수 있을 때까지.
#에필로그
할머니와 다시 함께 살게 되어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할머니와 언제든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별 거 아닌 대화이고, 이미 여러 번 들은 이야기도 조금씩은 달라 늘 새롭습니다. 다들 그렇게들 말씀하십니다. 할머니가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고. 할머니 혼자 삼켰던 시간들이 얼마나 길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할머니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