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손-할머니와 퇴근길

나도 모르게 놓치고 있던 것들

by 막뚱이

오랜만에 할머니와 함께 퇴근했다. 나는 버스를 한 번 환승하며 출퇴근하는데, 두 번째 버스를 타는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 할머니를 만나 합류했다. 출근길, 특히 금요일 출근길이라 더욱 발걸음이 가벼운데, 할머니와 함께 하니 더 더 즐겁고 신나는 기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버스 시간을 중간중간 확인하는 틈틈이 스마트폰 스크린에 눈을 떼지 못한다. 사실 그다지 보고 싶진 않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빈 시간으로 두기가 어색해서 관성처럼 뭐라고 손에 쥐고 있어 왔다. 그리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흘러나오는 스트리밍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날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버스정류장을 향하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할머니를 버스정류장에서 발견하고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스마트폰 화면도 닫고, 할머니 옆에 앉아서 재잘거렸다. 해가 부쩍 짧아져서 아쉽긴 하지만, 가을만의 분위기를 풍기는 풍경들과 장소를 둘러싼 소소한 생활 소리들을 오랜만에 받아들이며, 계절이 흘렀음을 느꼈다.

그러면서 빈시간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채우겠다고,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집념 하에 스마트폰에 사로잡혀서 놓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출퇴근 버스에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 뭐라고 더 하고 싶은 마음에 스마트폰에 매달리면서 놓친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풍경이 예쁜 날에는 스마트폰 화면도 닫고, 읽던 책장도 덮고 그냥 멍-때라며 출근길 아침 풍경 퇴근길 저녁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본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 생각들을 하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면서.


어렸을 때는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많았는데, 이것저것 나를 둘러싼 것들을 보고 듣는 것이 당연했는데, 본격적으로 학업에 열중해야 할 학생이 되고, 시간의 가치를 교육을 통해 주입받고, 무언가 하지 않는 시간은 쓸데없는 시간으로 치부해버리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있다 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시간의 유한성을 떠오를 수밖에 없고, 할머니와 함께 하는 이 순간들을 놓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산뜻한 바람, 무해한 주변 사람들, 해가 지는 풍경, 주말을 앞둔 마음의 여유. 주말이 오면 할머니도 함께 기뻐하신다. 그래서 ‘내일부터 이틀 쉴 수 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오늘 점심에서 먹은 것들’ 내가 거의 90퍼센트 정도 재잘거리면 할머니는 함께 주말이 오는 것을 기뻐하시며, 할머니 또한 오늘 출타 중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할머니는 요즘 외출할 때 책가방을 메고 다니신다. 내가 대학교 신입생 때 동기들 둘과 함께 맞춘 가방(추억)을 메고 다니시다가 버스에서 분실한 후, 이제 내가 고등학생 때 썼던 책가방을 꺼내 쓰신다. 특히 뭐 살 게 있으면 책가방을 꼭 메고 출타하시는데, 특히 시골에 가면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등산용 가방이랑은 조금 다른) 백팩을 메고 계신 걸 볼 수 있다. 이번에도 장을 보셨는지 책가방을 메고 계셨고, 버스를 무사히 타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할머니의 책가방을 건네받아, 이미 많이 어둑어둑해진 길을 올라갔다.


벼가 어느새 허리 정도 높이까지 길쭉하게 솟은 걸 보고, 남은 빛이 언뜻언뜻 구름 사이로 비치는 것을 보며, 켜진 가로등과 불이 켜진 집들의 마을 풍경을 보면서 아늑한 집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대신 메주시곤 했던 책가방을 이젠 내가 대신 메면서. 익숙한 풍경을 걷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스마트폰에 소중한 시간을 놓치진 않아야지. 이렇게 나도 모르게 놓치는 것들, 혹은 알면서도 손에서 차마 떼 놓지 못해 마음은 불편하면서 누워서 스마트폰과 함께 뒹굴거리는 시간들.

그렇다.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다짐이다.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도 어떻게 보면 강박일 수도 있다. 가끔은 놓쳐도 되겠지 뭐. 그래도 할머니와 수다 떨고, 이런저런 자연들이 변화하는 풍경들을 보는 시간들은 즐거우니까, 그 즐거움을 잊지 말고 오늘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한다.





에필로그

오늘 제목은 좋은 거 더하기 좋은 거입니다. 퇴근과 할머니는 언제든지 좋습니다. 이 글을 썼을 때만 해도 퇴근길에 해를 볼 수 있었는데 부쩍 해가 짧아져 버렸어요. 조금 아쉽긴 하지만, 겨울은 또 겨울만의 추억이 있을 테니, 남은 가을 좋은 기억들 함께 쌓아봐요. 사진 찍고, 가끔 글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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