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손-우리 집엔 큰 애기가 둘이 있다

자식은 언제나 아기?

by 막뚱이



부모에게 자식은 언제나 아기로 보인다고 한다. 자식들이 장성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었어도, 심지어 머리가 새하얘져도 자식은 걱정되면서, 한편으로 귀엽고 짠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 사회엔 진짜 아가는 물론, 쉰 살, 환갑, 심지어 칠순 넘은 아가도 있다. 전 연령대를 걸쳐 사회적 아가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해있다.


일하면서 종종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아저씨를, 아가라고 하긴 약간 쑥스러운 건장한 아저씨들을 아가라고 부르시는 할머니들을 보곤 한다. 아가님들은 정작 본인이 노모를 부축하면서도, 기꺼이 노모의 아가가 된다. 그렇게 끊이질 않는 자식을 향한 애정과 사랑을 보며,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면서,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부모가 되기 전까진 모를 내리사랑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 집에도 큰 애기 둘이 있다. 심지어 서로 애기라고 우긴다. 할머니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우리 집 애기는 바로 나, 막뚱이, 할머니는 닭에게 양보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나를 두고, ‘그래도 우리집 애기 아니냐?'라고 종종 말씀하신다. 애기니까 언니가 좀 봐주고 넘어가라는 뜻이다. 어느 날은 살짝 잠이 깰 듯 말듯했던 아침에 애기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들려왔다. 할머니가 이번에도 흔한 레퍼토리로 애기~어쩌고 하니까. 닭이 우렁차게 외치는 소리, "쟤 애기 아니야, 애기는 나야!" 누가 들으면, 영유아가 있는 집에서 나는 소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사회적으로 결혼 적령기인 큰 애기 둘이 있는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다. 우리 집은 이렇듯 집만 들어서면 회춘하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철없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철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이런 철없는 소리들이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흐르게만 할 수 있다면.


그러므로 닭과 나는 아가다. 그냥 아가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본인을 아가라고 어필하고, ‘아가’ 자리를 사수하려고 경쟁하는 아가다. 어렸을 때, 집 전화를 받으면, 수화기 너머로 고모할머니께선 따뜻한 목소리로 우리를 '아가'라고 부르시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아가'라고 불러주신다. 어른인 척 살다가도, 그 ‘아가'란 소리를 들으면, 잠시 어른의 역할을 내려두고, 기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기에 '아가'는 내게 어른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무게에 지친 마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 같은 단어이다. 그런 아가에 기대서 쉬기도 하고, 할머니에게 아가로서 재롱을 부리면서 시간을 조금 늦추고 싶다. 벌써부터 그리워질 것만 같은 오늘이니까.





#에필로그


큰 애기라는 단어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

cf) 증조할머니는 본인 스스로를 큰 애기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손자가 '할머니 이름이 뭐야?'라고 물으면 ‘얘, 내 이름은 큰 애기란다.'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그 대답이 재밌었는지 종종 웃으면서 증조할머니 일화를 들려주십니다. 큰 애기는 사실 작은 아기, 큰 아기 할 때, 혹은 어린 아기, 큰 아기 할 때의 큰 아기가 아니라 아가씨를 뜻하는 사투리라고 합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닭과 저는 큰 애기도 맞지만, 우리 집에선 정말 덩치만 자란 애기를 뜻하는 의미로 큰 애기라는 단어를 쓰고 싶습니다. 각자 집마다 가족들에게만 통용되는 문화나 별명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집에서 어떻게 불리시는지, 거기에 얽힌 추억은 무엇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 애기는 비표준어로, ‘아기’가 표준어지만, 실제로 집에서 주로 쓰는 말, ‘애기’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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