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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Dec 11. 2022

오손조손일기-철새 가족의 이동

우리 가족은 철새 가족, 방을 옮기다


우리 가족은 철새 가족이다. 철새처럼 철마다 거주지, 정확히는 방을 옮겨 다닌다. 최근 겨울을 맞아 방을 옮겼다. 급작스러운 한파에 쫓기듯이 가방에서 큰방으로 방을 옮겼다. 가방과 큰방은 우리 집  이름이다. 가방은 조금  크기가 크고, 에어컨이 있다. 그래서 주로 여름이 시작될 무렵 6월부터 온수매트로 버틸  있는 11월까지 묵는다. 가방의 실제 발음은 갓방에 가까운데, 어렸을 때부터  가방이 가방인지 궁금했었다. 아마도 집의 제일 . 가에 있는 방이라 실제 가빵이라고 불리는데, 사이시옷은 한자 사이에 쓰는  제한되어 있으므로, 갓방이라 쓰지 못하고, 가방이라 표기한다. 우리 집 가방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교과서에서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아재 개그를 녹여 등장한   문장을 대통합하는 그런 신비로운 방이다.


방 이름의 신비라면, 큰방도 만만치 않다. 큰방은  이름이 무색하게 ‘가방[가빵]’ 보다 작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일 작거나  번째로 작다. 그렇기에 우리 집 큰방은 안방의 기능을 했던  같다. 큰방과 가방은 어린 시절 나의 언어 체계에 혼란을 남긴 방들로, 나머지 방들, 부엌, 식당방(리모델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 가운뎃방으로 우리 집 공간을 구성했. 보통 집을 이루는 안방, 공부방, 거실, 서재, 옷방과 이름은 사뭇 다르지만 지금도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서두가 길어져 버렸지만, 큰방으로 옮겨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 설명하자면, 보일러는 가방. 큰방 모두 가동되지만, 큰방은 작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낫다. 더군다나 화장실이 가깝기 때문에 차가운 겨울 화장실의 심리적, 물리적 진입장벽을 훨씬 낮출 수 있다. 무엇보다 양치질을 상대적으로 덜 미루게 해 줘 치과에 덜 가게 하는 효과도 있다. 습관의 달인들은 습관 형성의 불문율로 환경 조성을 꼽지 않던가. 큰방으로의 온 가족 겨울을 날아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은 정말 가혹한 계절이다. 우리 집은 주택이기에 웃풍이 세다. 심지어 방에 누워 있어도 이불 차기의 달인인 나는 아침에 눈뜰 때마다 따뜻한 몸과 차갑게 식어버린 발을 동시에 만나곤 한다. 즉, 아무리 방안이라도 이불 밖은 위험하다. 이불만 벗어나면 한기가 날아와 서늘하게 꽂힌다. 겨울에 추운 만큼 여름이 시원하기라도 하면 조금은 덜 억울할 텐데, 여름엔 심지어 찜통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에너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비인간적인 집이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만만치 않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공평한 우리 집이지만, 더위보단 추위에 약한 나는 겨울이 더 두렵다.


하지만 겨울을 미워할 수만은 없다. 겨울은 추운 만큼 기억들을 꽁꽁 얼려서 추억이란 결정으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군고구마, , 김장김치 맛있는 음식과 함께 재워둔 추억들이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이번에는  어떤 추억을 쌓게 될지. 정들었던 가방을 떠나 크지 않은  방으로 향하는 , 가방에  있어, 인사를 한다. 지나온 시간이 무색하게 인기척은 빠르게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겨울잠에 빠진 가방, 다시 봄이   만나길 기약한다. 그리고 크지 않은 큰방에선, 작은 만큼  북적이며(물론 언니와 자주 물리적으로 음성적으로 부딪치게 된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는 시기. 겨울이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은 녹는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러했듯, 식구들 한가운데에서 보호받는 기분으로 포근하게   있는 시기, 겨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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