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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Jan 04. 2023

오늘조손-자기만의 방

언젠가 이루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도 방 이야기이다. 아직 애석하게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울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란 책에 대해 알게 된 후, 자기만의 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도 가진 적 없기 때문에, 바란 적도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자기만의 방'이라는 말을 알게 되자마자, 그동안 형체 없이 부유했던 바람이 형태를 갖고 마음속의 버킷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식구애게는 내 방이라는 개념이 없다. 아마 부모님 세대들이 그러했지 않았을까. 온 가족이 개인 사유 공간이라는 개념 없이 북적이던 그 시대를 넘어 내 세대에 이르러서야 내 방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내 방이 없는 사람들은 많지만, 적어도 나는 내 방이란 게 어느 정도 표준이 되었던 시기에 성장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의 대화는 여러 이질감을 남겼는데, 예를 들면 엄마, 아빠라는 아마도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단어와 더불러 아파트 놀이터, 학원, 따위 등이 귀에 낯설게 들렸다. 공감에서 우러나는 게 아닌, 글을 해석하듯, 사전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했던 누군가에겐 그토록 당연한 개념들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 방'이었다. 애석한 나는 정신 승리인지 아니면 그냥 겁이 많은 어린이인지, 나는 내방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부럽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무서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 밤과 귀신을 무서워했던 꿈을 자주 꾸는 어린이였던 나는 '내 방'이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감각. 깜깜함과 고독, 무방비함을 상상만 해도 몸서리치곤 했다. 내 방에서 자는 친구들을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자기만의 방에 대한 갈망은 중, 고등 시기에 이르러서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고. 가장 증폭된 것은 아마 고3 수험생 시절. 고3 수험생 때 역시, 공부방은커녕 내방도 없었기 때문에 절망스러운 수험생활을 해야 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고3 수험생, 조그마한 돌들도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그 시기에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언니와 나는 자주 부딪쳤다. TV를 보고 싶어 하는 언니와, 공부가 필요한 나. 한쪽에서 언니가 텔레비전을 들고, 한쪽에서 나는 인강을 듣고, 그게 우리 방의 풍경이었다. 그때는 다른 방이라는 선택지도 없었기 때문에, 같은 방에 북적거리며, 공부를 위한 투쟁을 해야 했다.​


그렇다고 도서관을 다니기도 여의치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고등학교 갓 입학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야자(야간 자율학습 참여였을 정도로, 집으로 가는 버스 막차가 짧았기 때문이다. 저녁에 도서관을 가기 여의치 않아, 토요일에 도서관을 종종 다녔다.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공부라니. 오히려 역경이 나를 막을수록 보란 듯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다들 떠먹여 주는 고3시절. 나는 공부를 위한 기본적인 환경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는 그런 왠지 모를 억울함과 결핍들을 보상해 주듯, 학교 시간에 올인했다. 쉬는 시간을 불태우며 공부했다. 그래서 몇 친구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집에서 공부 하나도 못했어~'라는 흔한 밑밥들이 내게는 진실이었으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에 매달려야 했다. 재수는 특히 나에겐 사치였기에, 애초에 없던 선택지였기에 간절함이 여전히 남아 지금도 가끔 수능 꿈을 꾼다.

어른이 되고 나서 어린 시절의 많은 것들이 나아졌다. 그것들에 감사하다. 특히, 간절함 끝에 얻은 대학시절은 삶의 경험치를 대폭 늘려주었다. 하지만 여전한 것은 바로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것. 아직도 겁이 좀 많은 나는 북적거리며 자는 게 좋지만, 나만의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 하지만, 아직 충족되지 않은 바람은, 장작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나아질 무언가가 있을 때 우리는 나아가니까. 그런 꺾이지 않는 바람들이 모여, 한 걸음 딛게 하니까.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또 너무 오랜만에야 올리네요. 사실 글은 이미 한 달 전에 대부분 완성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부담을 느끼다가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글을 사실 몇 편 더 적긴 했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그림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것에, 저에겐 재창조에 가깝게 느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더 갈고닦아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해의 소망을 적을 만한 시기에 올리게 되었네요. 자기만의 방은 당장 이루긴 어렵겠지만, 새해 독서 계획으로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도 조만간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다들 소소하거나 대대한 계획 세우셨나요? 언젠가 이루시길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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