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초의 기억부터 우리집은 조손가정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조손가정이란 부모의 이혼, 부재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조부모와 손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을 의미한다. 전에는 조손가정을 포괄하는 용어로, 결손가정이라 불리기도 했고, 경제적 여건에 따라 때때로 차상위 계층, 기초생활수급자(과거 영세민) 등 사회 취약 계층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가정조사 때, 가정의 형태를 묻는 설문지, 즉 누구와 함께 사는지를 묻는 그 문답을 통해 우리집이 조손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손가정은 똑같이 조손가정이라 일컬어진다고 해도, 그 속엔 정말 다양한 형태가 있고, 그렇기에 같은 조손가정이라도 해도, 다른 형태의 조손가정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얼핏 보기엔 평범해보이는 가정들이 제각기 사연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기억부터 내 삶에 부모님의 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 자리를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가정, 대부분의 가정 형태인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을 어렸을 때는 상상하곤 했다. 평범한 가정이 부러운 것도 있었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한 궁금함이 더 컸다. 내가 처한 상황을 측은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나는 정신승리를 잘 하는 아이였기에, 조손가정으로서 겪는 일들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성장과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어려움도 있고, 특별히 조손가정이라 겪을 수밖에 없었던 힘듦도 있다. 그런 힘든 시기에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었으면, 타인에게 떳떳하게 내몫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감사히도, 그리고 다행히도 그렇게 되었다. 너무나 먼 것처럼 보였던 어른이 되어, 제몫을 하는 사회인이 되어 평안한 날들을 보내는 순간이 온 것이다. 물론 온전한 평화란 이루기 힘든 것이지만.
나는 (감사히도) 지금도 할머니와 함께 산다. 커서도 조손가정이다. <나의 아저씨>, <그해 우리는> 같이 조손가정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나올 때면, 내심 반갑기도 하다. 그러면서 내안에 잠재되어 있던 욕망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조손가정으로서 겪었던 경험과 감정에 대해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 그리고 어느 새 내가 자란 시간 만큼 빠르게 흘러 간 할머니의 시간도 기록을 통해 조금씩 늦추고 싶다는 것.
내가 겪었던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지만, 내가 몰랐던 다른 이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과거의 나와, 혹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손가정의 구성원들과, 그리고 조손가정이 궁금한 모든 이와 나누고 싶다.
아마 어린시절부터 언젠가는 남기게 될 거라도 막연히 상상해왔던 것을 지금 시작해보고 싶다.
머리 속에 기억으로, 마음 속에 감정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풀어내며, 지금의 이야기도 함께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