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에서 귀향까지
조손가정의 아이는 자라서 어떻게 될까?
조손가정의 어린이들은 자라나 어른이 된 후, 독립해서 새로운 가구로 편입되거나 아니면 계속 조부모와 함께 사는 등 각기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첫 번째 유형에서 두 번째로 바뀐, 즉 따로 떨어져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유형에 속한다. 대학 진학을 위해 잠시 가족과 고향을 떠났다가 어쩌다보니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유학(?) 간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내가 서울 사람이 될 거라고 했다고 한다. 시골에선 서울로 가는 걸 출세하는 거라고 여겼는데, 시골을 떠난 수많은 청년들이 그러했듯 나 또한 서울 사람이 될 거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다.
출세하러 가는 막뚱이?
서울은 정말 멀고도 낯선 곳이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먼, 신기루 같은 도시. 서울은 수학여행 때나 (서울 친구들은 수학여행을 서울로? 띠용 이런 분위기긴 했으나 초중고 모두 서울로 수학여행 간 사람 나야 나) 학생 때 대외활동 참가, 대학 면접을 위해 간 것이 전부. 아예 살러가는 건 처음이었다. 대학 합격은 굉장히 기뻤으나, 집을 떠나는 건 현실이었다. 나는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인생 첫 독립 공간, 서울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기숙사 입소를 미루고 미루다 입학식 전날 닭(=언니)과 이불, 생필품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로 향했다. 택시를 탈 줄 몰라 그 짐들을 이고, 버스를 타고 학교 기숙사에 도착했다. 짐을 대충 풀고, 닭은 입학식만 보고 다시 집으로 떠났고, 나는 서울에 나 혼자 남겨졌다. 덩그러니. 기숙사는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새내기의 나날
캠퍼스의 3월은 정말 들뜨고 설렌다. 코로나 전까지 매년 그랬었다. 코끝이 간질거리는 기분. 나름 대학생활을 잘 해내고 있으면서도 밤에 기숙사 침대에 있을 때면 괜히 할머니 생각이 나서 훌쩍였다. 룸메이트가 들을까 봐 이불속에 코를 막고, 소리 없이 눈물만 쪼르륵 흘렸다. 막 힘들거나 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이대로 집에서 멀어지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이대로 나는 고향별에서 떨어져 낯선 우주를 표류하게 되는 걸까. 대학 졸업까지는 적어도 4년, 동기들은 다들 너무나 신나 하는데, 나 혼자 마음 한 켠이 무거운 것 같아 내색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나 말고도, 그때 기숙사 어딘가 한구석에는 활기찬 하루를 보냈음에도 밤이 되면 허전한 마음에 눈물을 삼켰을 누군가가 또 있었으리란 것을. 캠퍼스의 3월은 낯선 우주에 떨어져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시기니까.
축약된 서울 생활과 현재의 일상까지
그 이후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오히려 서울에 대한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왔던 나는 서서히 서울의 매력에 스며들었다. 나는 지하철에선 손잡이 잡지 않고 스마트폰을 하며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균형 잡기의 달인이었으며, 학교는 집이었다. 기숙사에 살았으니 당연한 거지만.
몰려드는 과제, 시험, 밤샘, 팀플, 아르바이트 등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한 번은 친구와 시험 준비를 하다가 우리 시험 몇 번이나 더 봐야지, 즉 이 짓은 몇 번이나 더 해야 졸업장을 얻을 수 있는 건지 세어 가며 아득해하기도 했다. 사실 그땐 ‘대학시절이 제일 좋을 때’라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한 것보다 더 바빴으니까. 근데 아쉽게도 어느 정도는 그게 사실이었다.
대학 졸업은 4년이 아닌 6년이 걸렸고, 우여곡절 끝에 취업을 했고, 어쩌다 보니 다시 고향에 와 있었다. 할머니는 막둥이의 귀환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이렇게 시작된 지금의 일상. 지금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고, 순간순간에 감사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리고 그런 일상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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