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많은데 나오는 건 한숨뿐
앨범을 정리하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옛 연인의 사진을 봤다.
한 때 가장 가까웠지만
이젠 목소리도 기억 나지 않고
낯설기만 한 사람.
그와 나는 여느 연인들처럼
알콩달콩하다가 무덤덤하다가 하는
평범한 커플이었다.
그를 많이 사랑한다기 보다는
그저 잘해주는 것이 즐거웠던 그 때의 나는
나름대로 애쓰며 그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누군가가 그에게 여자친구 맛있는 거 좀 사줘 라고 말했고
나는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
왜 문득 그 질문이 나왔는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 짐작컨대 나도 모르게 서운한 무언가가
내 속에 계속 쌓였었던 것 같다.
그 질문에 그는 내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어떻게 보면 참 유치하게도
나는 그 후 그가 너무 불편해졌다.
그때부터 그와의 관계 하나하나 다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라.
이게 나를 좋아하는 게 맞을까.
그 계산의 끝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한다 말할 정도로
그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라는 것
결국 후에 그와 이별을 하고
꽤나 긴 시간을 그와 공유했지만
정말 아름답게 사랑했다 추억할만한 것은
단 두가지만 떠오른다.
내가 아파 누워있을 때
찬 바닥에 누워 내 손을 잡고 있던 그 순간,
또 한 쪽 이어폰 씩 나눠끼고
밤거리를 거닐며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내 귓가에 속삭여줬던 순간
우습게도 두가지 순간 다
연인이 된 뒤 한달 내에 있었던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후에 좋은 추억이란 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도 가장 많이 좋아했고
가장 오래 만남을 이었던 사람을 꼽으라면
고민없이 그를 꼽겠지만,
그와 인연을 맺은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오래 함께일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가 함께한 세월에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