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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의 역사

서른두 번째 월요일밤

by 오소영

어릴 적부터 대식가였다. 식탐이 많아 뭐든지 많이 먹으려 했고, 잘 먹으면 어른들에게 칭찬을 듣는다는 것을 체험한 후로는 더 많이 더 잘 먹으려고 했다. 그래서 항상 내 양보다 넘치게 먹었고 빨리 키가 컸지만 키 크는 게 어느 정도 멈추자 체중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중학생부터였을 것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그때는 먹는 음식을 줄이면 체중이 잘 내려가서 그렇게 살을 빼고는 다시 먹으면 체중이 다시 늘어나는 것을 반복했다. 여전히 운동은 따로 하지 않았다. 내 몸은 살이 잘 찌는 체질로 점점 바뀌었다.


20대에도 다이어트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다이어트에 완전히 빠져서 다이어트 커뮤니티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하며 나름 정석의 다이어트를 계속했다. 하루 천 칼로리 미만 섭취와 운동 3시간 이상을 매일 하다 보니 체중은 쭉쭉 내려갔고 심하게 마른 몸이 되었는데 그때의 만족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떤 옷을 입어도 괜찮아 보였고(내 눈에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리 싫지 않았다.


3,40대에는 극단의 다이어트 이후 10킬로 정도 늘어난 체중으로 살았다. 매일 내가 살쪘다고 생각했으며 다이어트를 해야지라고 계속 생각은 했으나 실천하지 못했다. 40대 후반에 한번 다이어트를 해서 6킬로가량 뺀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 먹고 있던 우울증 약과 호르몬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마음의 병 때문이었을까 다시 금방 체중이 늘어났다. 매일밤 우울한 마음이 들면 그냥 먹었다. 먹어서라도 죽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게 나을 거라는 나 자신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늘어난 체중이 고도비만으로 넘어가기 직전(BMI 수치로) 병원에 간 나는 어떤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너무 힘들다 말씀드렸고 간단한 ADHD 검사를 받은 후 아토목세틴을 처방받았다. 양을 천천히 늘려야 한다고 하셔서 용량도 그리 많지 않게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부터 이상하게 식욕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먹으면 멈추기 시작했다. 누구나 이렇게 사는 거겠지 생각하면서 체중을 재보니 1주 만에 2킬로가 줄어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상 속이 좋지 않고 가스가 많이 찼었는데 그 증세도 없어졌다. 갑자기 이런 변화를 겪으니 이 약을 안 먹으면 원래대로 돌아가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친구에게 얘기해서 들은 답대로 좋은 일이 생겼다면 그 뒷면을 보려 하지 말고 그 자체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아토목세틴을 처방받을 무렵 읽기 시작한 책이 있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이라는 책이고 서론까지만 읽어본 상태인데 굉장히 빠져들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오랜 기간 식이장애를 겪었고, 도입부엔 거식증이 시작된 이야기가 쓰여있다. 나는 거식증에 걸려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이야기들이 맘 속 깊이 이해되었다. 여성의 식욕, 몸, 자아를 둘러싼 내면의 갈등과 사회적 압박에 대하여 여성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억압된 욕구는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만의 몸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배가 많이 나와서 맞는 옷이 잘 없는 게 좀 힘들었지만, 나이가 든 여성에게 주어지는 무관심이 날 편하게 했다. 20대에는 길에서 가슴이 작다고 다리가 굵다고 얘기를 들은 적이 많았고 두려웠는데 이제 그런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식욕이 점차 줄어들고 체중이 조금씩 내려가자 다시 예전의 체중과 사이즈에 대한 집착들이 스멀스멀 몰려들었고 이제 그런 감정들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나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정한 나를 제대로 알고 그 모습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내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 나이가 된 지금도 의문이 가득하지만, 매일 조금씩 내가 갖고 있는 잘못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나 자신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진정한 나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걸 이루지 못한다 해도 조금씩 나아지며 사는 삶은 꽤 좋은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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