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영화 씨는 자신의 참을성을 과대평가했다
인명과 지명, 상호는 모두 가상의 이름입니다. 매 회차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여러 직장에서 겪은 실화이며, 두 번째 이야기는 빌런의 사연을 지어낸 픽션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황이든 한 부분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촘촘하게 이쪽 면과 저쪽 면을 같이 들여다보고 놓치게 될 수 있는 부분까지 치열하게 고민한 뒤에 무언가를 결정하고, 판단하면 그만큼 불편한 상황이 줄어든다.
적어도 난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내리는 결론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계약 시 확인되는 약관도 그렇지 않은가. 손익을 따져가며 만약의 만약의 만약까지 생각해서 읽을 엄두가 안 날 정도로 길게 써두는 글임에도 그 안에서도 불합리한 조항을 찾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류의 글을 읽다 보면 특히 '시기', '기간' 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어떤 연유로 그 기간만 가능하게 되었으며, 어째서 그 연령에게만 제한이 있는지 등이 궁금해지곤 했다. 회사에서 고객 응대를 위해 만들어둔 정책도 비슷하다. '제품의 보증기간은 몇 년'이 한 줄은 고객과 응대하는 직원 모두 보호하지 못하는 감정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보증기간은 1년이지만 ~경우 1년 n개월까지 보증 가능하다.'라는 식으로 만약의 만약까지 고려하여 쓰여있다면 고객의 경우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찾아가며 안내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고객응대 직원들은 몇 줄짜리 정책에 의지해서 고객과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융통성은 그때그때 응대직원의 재량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26년 새해를 갓 지난날의 어느 전화도 그랬다.
처음에는 너무나 부드러운 말투로 자신의 고장 증상을 설명하고 전화를 받아주었음에 고마움까지 표해주시는 아주머니였다. 어느 정도 들을 설명을 듣고 AS접수 관련 안내를 하기 위해 입을 뗐다. 역시나 고객은 예의가 찰랑찰랑 넘칠 듯한 말투로 고분고분 듣고 계셨다.
그러던 중 나는
"검수 결과에 따라 비용 발생되면 전화로 안내드리고, 부재중이실 경우 문자 안내 드리게 됩니다."
라고 늘 하던 안내를 드렸고, 고객의 말투는 그때부터 온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비용이요?"
"네, 고객님. 구매시기가 1년이 넘으셔서 무상보증기 경과하여.."
"보증기간이 1년밖에 안 돼요?"
말도 끊고 들어오기 시작하셨다.
"네 고객님.. 원하시는 답변은 아니시겠으나, 1년 이후에는 비용이 발생되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나 역시 깜박깜박하는 편이지만 이럴 때만큼은 모든 사람이 한 번 본 글을 무조건 기억하고, 무조건 납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세페이지에 적힌 대로 우린 안내할 뿐인데 언제까지 이 고정된 정보를 전달하며 양해를 구해야 하는가.
"아니 20만 원 넘게 받아먹어 놓고 1년만 보증을 해요? 대기업 000은 몇 년인지 아세요?"
그럴 때면 내 마음 안에 유치빤스세포가 작동하며
"하지만 고객님은 저희 제품을 사셨잖아요... 000 제품을 사셨으면 됐잖아요........."라고 말하는 상상을 할 뿐이다.
"아니 내가, 처음에 이 증상이 나타날 때 참고 참고 쓰다가 이제 연락을 하는데 어떻게 꼴랑 1년을.. 참.. 정말..."
그러게 왜 참고 참으셨냐고 말하고 싶었다. 유치빤스 세포는 일렁일렁임을 넘어 어느새 해일이 되어갔고 처음에 이 고객의 말투에 편안함을 느끼던 감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내 안에서 잘 작동하는 '쿠션언어 변환기'만이 감정의 파도 속에서 맹렬히 작동하고 있었다.
맘 같아선
"그러니까 참지 말고 연락하지 그러셨어요."라고 하고 싶은 감정을 변환기의 작동 덕에
"고객님, 불편함 감수하고 계속 쓰기보단 진작 연락 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희도 모든 고객님의 상황이 다르다 보니 연락 주신 기간 기준으로 안내드릴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며 무한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며칠 지나신 건 저희도 재량 껏 이번 접수건까진 비용 절감하실 수 있게 도와드렸을 텐데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난 건은 보증기간 경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럼 됐어요. 수리 안 할게요."
- 뚝 -
뭐랄까. 차라리 이 분이 먼저 포기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했어야 하는 걸까. 이럴 때 만약 '~한 사유로 제때 접수 못한 경우는 사유를 증빙하면 1년 n개월까지 보증가능하다.'라는 정책이 추가로 한 줄 더 기재됐다면, 그랬다면 좀 나았을까? 도통 알 수 없는 날이었다.
"엄마엄마, 내 워치 어디에 놨는지 알아?"
딸이고 아들이고 자신에게 맡겨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안 보이는 물건은 족족 엄마한테만 묻는지 영화 씨는 궁금해졌다. 남편과 함께 있어도 늘 자신에게 찾았다.
"엄마가 어떻게 알아.. 네가 생각해야지 이것아."
"여보여보, 청소기 또 안되는데?"
그건 또 어쩌란 말인가. 영화씨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든 없든 일단 불러놓고 보는 가족들이 야속했다.
"청소기가 뭐 어떻게 안된다는 거야, 당신은.."
"아니 이게 흡입이 너무 약하지 않아?"
"어우, 줘봐.. 청소기가 죽는소리를 내네... 뭘 빨아들인 거야 이번엔.."
"아니 뭐 청소하면서 빨아들이는 게 뻔하지 뭐.."
"어으 인간아, 브러시가 꽉 막혀서 아무것도 못 빨아들이고 있네! 아우 드러워 증말...!"
"어어 그러네, 아 담엔 여기도 볼게. 아 역시 당신이야."
이런 추켜세움은 그다지 기쁘지도 않다.
"엄마엄마"
"한 번만 불러 이것아. 엄마 닳어."
"에이 엄마- 나 내 컴퓨터 모니터 AS좀 맡겨주면 안 돼?"
"그걸 왜 엄마가 해애."
"나 그런 거 전화 못하잖아. 여기는 어플로 접수도 안된단 말이에요."
"어디로 해야 하는데."
결국 못 이기는 척 해준다고 하니 기사 명함을 슥 내민다.
주말에 한 바탕 정신을 쏙 빼놓고는 자식들도 약속이 있어 나가고, 남편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적막한 집. 이제야 휴식인가 싶어 잠시 소파에 기댔다. 하지만 몇 분 안 되어서 세탁기가 저들 일 다 끝났다고 노랫소리를 들려준다.
"간다 가."
오늘 날씨가 흐리기도 하고 추워서 창문은 닫고 제습기를 돌리면서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생각했다.
"참... 이것저것 사다놔서 편리하긴 한데... 이것들 고장 나면 졸지에 얼마나 불편이 올지 아찔하네 아찔해.."
세탁기며, 제습기며, 에어컨이며, 청소기며... 사놓고 다들 1~2년은 됐거나 그 이상 오래 붙들고 있는 가전제품들이었다.
영화 씨는 빨래를 널고 시계를 봤다. 어느새 오후 3시, 점심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뭐라도 먹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가 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라면을 끓였다. 수프를 조금 바닥에 흘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따 청소기를 한 번 더 돌리면 되니까.
라면 한 그릇을 후루룩 삼키고 설거지를 하고, 가족들이 다 못 치운 집을 마저 치웠다. 소파 틈에서 딸이 한참 찾던 워치가 나왔다.
"못살아 정말..."
워치를 딸 책상 위에 놓아주고 빨래를 새로 널기 전 싹 걷어둔 빨래들을 깔끔히 각 맞춰 접어 가족들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서랍에 넣는 건 최소한 너희들이 하라는 마음을 그득그득 담아서. 그리고 아들내미가 부탁한 AS도 맡기고, 가족들 옷 드라이 맡길 건 어플로 접수하고, 가족 심부름을 하는 걸로도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아까 흘린 라면수프를 치우러 청소기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분명히 아까 묵힌 가래처럼 구멍을 막고 있던 이물질을 한가득 제거하고 해결한 줄 알았는데 청소기가 다시 골골 거린다. 막힌 곳이 더 있던가 하고 좀 더 들여다보려다 잔 먼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보기 안 좋았다. 이따 치우면 된다고 생각하며 좀 더 청소기를 들여다봤지만 문제를 못 찾겠다.
결국 영화 씨는 청소포를 끼워 마대로 주방 바닥을 치운 뒤 제품에 붙어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영화 씨는 특유의 잔잔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걱정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전화가 연결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말이다. 평소에 어떤 식으로 관리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 했으며, 지금 어떤 문제가 불편한지도 설명했더니 자신만큼이나 잔잔한 톤으로 상담하는 사람이 응대해 주었다.
전화 말미에 기분 좋게 접수하려는데 비용이 든다는 것이 아닌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전화하면 상담해 주는 사람들도 얼마나 들 번거롭고 일이 많을까 싶어, 가급적 깔끔히 관리하고 조금 안 되는 건 집에서 해결하려고 애썼는데, 꼼꼼히 알아보고 가성비 좋은 제품 사용하려고 마련한 청소기가 고작 1년만 보증이 된다니, 심지어 잔잔하게 문제가 생긴 건 1년이 채 되기 전이었던 걸 이제서 연락하는데 이 사람은 답답한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참는 데에는 이골이 난 영화 씨였다. 웃어넘기고 여전히 잔잔하게 통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괘씸했다. 이럴 거였으면 그냥 가족들이 뭔 일만 있으면 자신을 불러재끼듯이 조금 안 되면 족족 전화를 하는 게 나았을 것을.
끝나지도 않을 것 같은 통화를 계속 이어가기도 지쳐버렸다. 내내 미안하네 양해를 구하네 어쩌네 하는 전화도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신경질 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고도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자신의 기분은 배설해 버렸는데.
저 청소기는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새 청소기 구매를 알아보는 영화씨였다.
대기업 것을 살까, 아니면 또 다른 가성비 제품을 살까 하는 어리석은 고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