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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 속의 엄마손,

by WriteWolf


절체절명의 순간, 가장 많은 이들이 뇌리에 떠올리거나 떨리는 입술 밖으로 내어놓는 말은 바로 "엄마"다. 우리는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엄마'로부터 태어났다. 엄마란 바로 '나'라는 존재의 출발점이기에,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맞이할 때 모든 것이 시작된 지점을 떠올리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신을 낳아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과 감상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엄마'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복잡 미묘하고 중첩된 감상에 젖게 만드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만큼은 '엄마'라는 존재가 곧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을 내미는 존재'라는 명제를 일반론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남자인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아이를 낳으며 느낀다는 고통인 '산고 産苦'를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분만실에서 갓 태어난 신생아를 품에 안아 드는 상상만으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데, 무려 열 달 동안이나 몸에 품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에게 자식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지 감히 가늠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난제다. 엄마의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의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몇 해 전, 어느 종교 회의에서는 '생명의 시발점'을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이라고 정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과연 생명의 시작이란 그렇게 어느 지점을 정해 칼로 나누듯 이정표를 꽂아두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일까. 만일 그와 같은 '수정의 순간' 개념을 전제한다면, 우리의 생명은 '아빠'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엄마'로부터 출발하는 셈이 된다.


주변에서 아직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했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채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갑작스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 먹은 것은 어느 햇살 좋은 오후였다. 작업실의 창이 서쪽으로 나 있는 덕에 저녁이 다가올 무렵이면 일하는 자리가 황금빛 저녁 햇살로 가득해진다. 동이 틀 때의 태양광은 새벽의 한기 탓인지 다소 차가운 느낌이지만 저물어가는 빛은 어쩐지 따뜻하다. 마치 한창 밖에서 흙장난을 치며 놀던 아이가 엄마가 차려 놓은 따뜻한 밥상을 떠올리며 집에 돌아가는 듯한 포근한 느낌을 준다.


따뜻한 저녁놀을 온 등으로 받아내며 글을 써보려다 키보드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고 말았다. 지나치게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사실 '엄마'라는 존재의 역할은 따뜻한 빛이다. 무언가를 억지로 풀어놓거나 말하려 애쓰지 않아도, 거부하려 등을 돌리거나 고개를 돌려도 항상 나를 향해 쏟아지는 온기와 애정이 있다. 이는 마치 항상 '나'라는 방향으로 비추는 태양과도 같아서, 모른 척 해도, 등 위로 뒷덜미로 쏟아지는 볕을 다 인지하고 있는 순간과도 같다.


공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햇빛의 고마움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물론 해가 떠 있고, 빛나는 것이 그 사명이자 역할이기에 당연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약간이나마 고마움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런 연유나 인과 없이 우리가 '엄마'에게 '그저 고마움'을 표현한 것은 과연 언제였나.





가정이란, 엄마와 아빠로부터 비롯되어 자식이 생겨나면서 그 의미가 깊어지고 넓어져간다. 그 가운데 항상 중심에 위치하는 것은 바로 '엄마'다. 엄마는 아빠에게 있어 '돌아갈 곳'이자 자식들에게는 '비롯된 곳'이며, 모든 가족 구성원에 있어 '함께함'이 가장 자연스러운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래서일까, '엄마'가 행복한 가정 치고 다른 구성원들이 행복하지 않거나 우울한 가정을 본 적이 없고, '엄마'가 불행한 가정 치고 다른 구성원이 마냥 행복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출산을 앞둔 아내 곁을 지키며 여느 때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또 깨닫는다. 이렇게나 힘든 거구나.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 모두가 태어난 거구나. 앞으로는 더 힘들겠구나. 덜컥 겁도 난다. 동시에 이제껏 보지 못했던 삶으로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듯한 설렘이 공존한다.


사실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확 와 닿지는 않는다. 삶이 다소 변하기야 하겠지만 남자에게 있어 출산 이후의 삶이란 현실적으로 지금까지의 연장선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확 와 닿는 사실은 바로 아이의 탄생과 동시에 새로운 '엄마'가 함께 탄생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영원토록 따뜻한 햇살처럼 여길 존재가 탄생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하다.






“But there's a story behind everything. How a picture got on a wall. How a scar got on your face. Sometimes the stories are simple, and sometimes they are hard and heartbreaking. But behind all your stories is always your mother's story, because hers is where yours begin.”


"모든 것에는 뒷이야기가 있기 마련이야. 어떻게 저 그림이 벽에 걸리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네 얼굴에 흉터가 생겼는지. 알고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때로는 가슴 아프거나 견디기 힘든 이야기들도 있단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 그 모든 뒷이야기의 더 뒤편에는 항상 엄마만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거야. 왜일까? 그건 바로 네 모든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란다."


- Mitch Albom,





삽화 : Cover . Robert Coombs 作 / ⅰ. Joanne st Cyr 作 / ⅱ. Robert Coombs 作 / ⅲ. Igor Morski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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