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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내일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by WriteWolf


그림 같은 내일을 꿈꾼다. 유명한 삶 혹은 화려한 삶도 좋을 것이나, 그와 같은 삶이 아니어도 좋으니 내일 만큼은 아담한 한 폭의 그림과 같기를 희망한다.


침대 위의 중력은 오늘도 무거웠다. 자명종 소리에 깨어나는 순간은 끔찍하지만 자명종 소리 없이 일어났음에도 묵직한 아침은 더욱 끔찍하다. 눈을 뜨는 순간 무거운 몸으로 인해 개운하기를 희망하던 마음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양치질을 해보거나 찬물을 들이키며 영혼을 고양시키려 애를 써 보지만 무언가 어긋난 상황은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지친 밤을 보낸 뒤 아침을 맞이할 때면 푸른 하늘과 눈이 찌푸려지는 햇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넘쳐 나는 엔도르핀을 상상한다. 대부분의 경우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무거운 날과 달리 맑은 날은 항상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창가에 다가와 있었으므로.




무거운 하루의 시작은 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기를 희망케 한다. 아이러니함이란 그러한 즉흥적인 희망을 받아들여 실제로 한나절을 침대의 중력에 맡긴 뒤 깨어났을 때의 불쾌함에 있다. 이래야 하는 것인지, 저래야 하는 것인지, 삶이란 참으로 갈피를 잡기 어렵다. 지나치게 배가 불러도, 지나치게 원하는 바를 달성해도 상상하던 유쾌함 대신 불쾌감이 찾아오는 현상은 무어라 설명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인 듯하다.


가끔 삶을 바라보는 관점, 그 모든 것이 새하얗게 지워지는 순간이 있다. 어제까지의 진실이 오늘의 흩날리는 티끌처럼 느껴지는 일그러짐 속에서 일말의 평화로움, 나아가 안도감마저 느낀다.


'그래, 그게 세상의 전부였을 리가 없지'


어릴 적 동물의 왕국이나 오지 탐험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삶의 방식과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로부터 잠시 동안의 '계몽 받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과 오늘날은 실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획일적인 삶의 방식과 구조에 염증이 느껴져 때로는 스크린을 통해 정신적 고양감선사하던 오지로 무작정 떠나 보고 싶어 진다.

슬프게도, 어젯밤 확인한 결 지난날의 오지는 오늘날 대부분 숨은 관광 명소가 되어 온갖 블로그와 책자에 소개되어 있었다.


어느 새 모든 것이 이 '세상의 틀' 속에 끼워 맞춰진 기분이어서, 또한 상상 속의 해방구로 이어지는 통로마저 닫힌 느낌이어서, 더욱 아침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림을 그려 본다. 소위 현실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하게, 전혀 무관하게도 그려 본다.


나무를 그린다고 말한다. 초록색 물감과 갈색 물감을 이용해 미루나무를 그린다면 분명 모두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나무가 탄생한다. 그러나 짙은 보랏빛 물감과 노란 개나리색 물감을 이용해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고래를 그린 다음 나무를 그린 것이라 주장해도 좋은, 그런 세상을 그려 본다.


작가와 예술가의 작품 세계는 존중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며, 범상한 범주에서 벗어날수록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상 그들의 작품 세계란 조금 더 성숙한 언어와 대중과의 부합에 적합한 색채로 부풀려졌을 뿐, 다섯 살 소녀가 그리다 잠든 '바다 위를 떠 다니며 씨앗을 뿌리는 나무'에 깃든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리와 마음, 몸이 모두 무거운 아침의 원인을 깨달았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서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신선한 '세계관'이 아닐까.




잔혹하고 냉정한 셈법이지만, '그림 같은 내일을 꿈꾼다'는 표현은 사실 '막연히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한다'는 표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변에 나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배를 기다리는 것처럼, 배에 몸을 실은 이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육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림 같은 내일을 꿈꾼다.


조바심을 낸다고 내일 도착할 배가 오늘 밤에 도착하지는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른다고 일주일 뒤 모습을 드러낼 뭍이 당장 눈앞에 솟아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여유를 가져 보는 게 어떨까.


나도, 당신도,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The sea does not reward those who are too anxious, too greedy, or too impatient. One should lie empty, open, choiceless as a beach - waiting for a gift from the sea."

"걱정, 욕심, 안달로 가득한 자에게 바다는 자비를 베푸는 법이 없다. 비워내고,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해변과도 같이 기다려야 한다."


- Anne Morrow Lindbergh, 시인




삽화 : ⅰ. Joshua Bronaugh 作 / ⅱ. Cathy Hillegas 作 / ⅲ. Magritte 作 / ⅳ. Derek Harrison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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