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칙칙폭폭-,

떠나는 길, 그리고 돌아오는 길

by WriteWolf


떨쳐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때로는 의무로부터, 때로는 중압감으로부터, 때로는 잘 짜여진 직물처럼 답답한 일상으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한다. 그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규칙적인 발굽소리, 바다내음과 함께 풍겨 들어오는 뱃고동 소리, 이륙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탑승해달라는 항공사의 안내방송은 아름답다 못해 야속하게까지 들린다. 바다가 펼쳐진 곳이어도 좋고 한적한 시골이어도 좋다. 모든 것을 잠시 제쳐두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돌아볼 수 있다면.


'시간적, 금전적인 여유만 있다면 매일 같이 여행 다니고, 놀러 다니면서 살 텐데'하고 모두가 한 번쯤 해볼 법한 실없는 공상을 따라 해 본다. 그러나 이내 그와 같은 동화 같은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나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의 역사로 남을 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돈이나 시간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소중한 존재다.




소중한 존재란 그 무엇이어도 좋다. 가족이어도 좋고, 연인이어도 좋고, 자녀여도 좋을 것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 혹은 신념이나 신앙이어도 좋다. 심지 그것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아도 좋다.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이 없다면서 길을 떠나는 이들도 저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거나 깨우치고 돌아오는 것이 여행의 귀로인 법이다.


자신이 인지하고 있건 그렇지 못하건, 삶에 소중한 가치가 존재하는 이들은 그토록 꿈꾸고 꿀맛이라 느끼던 일탈에서도 결국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온다. '계속 누릴 수 없으니까, 현실이니까'라고 말은 하지만 실상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억지로 즐거움을 지속하는 것보다 정작 본인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쓴웃음과 찌푸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 돌아오는 것이다.


소중한 것이 없는 이들은 결코 떠난 길에서 돌아오는 법이 없다. '돌아갈 곳', '돌아가고 싶은 곳', '돌아와 안기고 싶은 품'이 없는 까닭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다시 말해 돌아갈 곳이 있다는 뜻이다.


항상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돌아올 곳이 어딘지 알지 못한 채 떠난 이가, 먼 곳에서 자신이 돌아갈 곳이 어딘지 깨닫고는 사투를 벌이며, 혹은 사색에 잠겨 먼지투성이로 되돌아오는 여행기였다.



삶이란 것에 너무 몰입을 하다 보면 마치 명화를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붓터치가 보이고, 캔버스의 재질이나 작은 흠집이 보일 정도로 매 순간과 하루하루에 집중을 하지만 어느 순간 '그래서 대체 이게 누구의 그림(인생)이고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하는 의문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떨쳐 떠나고 싶은 순간'이란, 근거리에서 삶을 들여다보는 일에 지친 우리의 시야가 잠시 숨을 돌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삶을 다시금 재조명할 필요를 느끼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떨치고 싶다 하여 명화를 버릴 생각도, 무언가 다른 그림을 찾을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거리가 필요한 것 뿐.




아무리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재조명하게 되어 감정이 고조되었다 한들,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무겁고 질척한 법이다. 또다시 책무와 반복, 중압감으로 얼룩진 지정 좌석으로 돌아가야 하니 말이다. 적어도 돌아갈 곳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이 순간만큼은 심술궂게 들린다.


내가 돌아올 때, 누군가는 떠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떠나던 무렵 또 다른 누군가는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돌고 돌며, 무의식 중에 세상의 빈 자리를 서로 채워간다. 서로가 소중한 존재를, 가치를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어째서일까. 그렇게 즐거운 여행과 시간을 보냈는데도, 인류의 보편성이랄까, 우리는 보금자리에 돌아와서야 가장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무리 좋은 관광지, 특급 호텔에서도 이 좁은 침대, 어스름한 빛이 새어져 들어오는 방에 돌아와 느낀 포근함이나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낄 수 없다. 떠나기 전의 우리는 일상 속 무엇에 지쳐 있었던 것일까.


그저 잠시 몸을 뒤로 젖히고, 모든 것을 남일처럼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이, 정신적 이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세상에 아름답기만 한 것, 추악하기만 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떠난 이는 돌아오며, 돌아온 이는 또다시 떠난다. 좋은 여정의 기억에는 대개의 경우 일상의 무료함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동시에 기나긴 일상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짧고 행복했던 순간들으로부터 비롯된다.


'돌아올 곳' 혹은 '돌아갈 곳'이란 보통 삶에서 가장 소중한 동시에 약간은 지긋지긋한, 중력과도 같다. 달나라 여행을 꿈꾸고 우주여행을 꿈꾸지만, 실상 우리는 대기권 밖에만 나가도 잠시를 버티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소중한 것이 없는 삶이란, 맨몸으로 무중력 우주를 유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시작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해도, 그 감흥은 돌아온 일 주일을 넘기기 어렵다. 열흘이 지나면 다시금 염증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고, 무언가 비난하거나 저주할 대상을 찾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난 여정을 추억하며 또다시 새로운 여정과 일탈에 대한 희망을 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어디론가 훌쩍 떠날 것이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소중한 것은, 바로 이곳에 있으니까.





삽화 : Cover . Patricia Morris 作 / ⅰ. Ann Tristani 作 / ⅱ. Andrei Belichenko 作 / ⅲ. Norman Rockwell 作 / ⅳ. Francis McCrory 作 / ⅴ. Rachel Bingaman 作 / ⅵ. Jeff Rowlan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