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

by WriteWolf


노래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 글을 쏟아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고, 커피 한 잔을 머금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서툴러 잠을 청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깊은 잠을 만끽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개운하리만치 머릿속이 정돈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눈에 보이도록 물건들을 늘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마음과 정신에 알맞은 정도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불확실한 상태를 싫어하는 탓에 선택을 위해 주어진 열흘 중 첫째 날에 결론을 내리고 남은 아흐레를 다른 일에 집중하고, 다른 누군가는 아흐레 하고도 스물세 시간이 부족해 마지막 60분까지 고민하곤 한다.


생각들을 항상 정연하게 세워둔다는 것은 어쩐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삶에서 접하는 모든 정보를 흘러가는 바람에 맡겨 놓는 것도 불안한 법이다. 한 해가 시작되기 전, 365 페이지로 구성된 노트를 한 권 구매해 매일 '현실적인' 일기를 써 보겠노라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1월 1일에는 한 페이지가 모자랐고, 1월 2일에는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사흘째부터 하루에 할당된 페이지를 가득 메우기가 어려웠다. 첫째 날과 둘째 날에 대부분의 잡념들이 종이 위에 쏟아진 까닭이었다.


그 이후로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은 아주 가끔, 가장 조용한 시간이 자연스럽게 주어질 때에만 이루어졌다. 어떤 특별한 일도 없는 일상 속에서 억지로 하루에 몇 분씩 명상을 하거나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도 왠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이 깊은데도 별 일 아닌 척 제3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유체이탈식 사색을 추구하는 것도 어딘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복잡한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의 흐름을 되짚으면서, '어떻게 흘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인가'에 대한 물길을 대략이나마 파악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을 전혀 정리하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분하게도(?) 그는 자신의 삶에 아주 만족하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부러웠다. 복잡하게 되돌아보지도, 쓰린 기억을 되살려내지 않아도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그를 지켜보면서 역시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생각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는 분명 잰걸음으로 자신이 믿는 '앞'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왼발에 비해 오른발을 더 앞으로 딛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데 있었다. 언제 쉬는지 모를 정도로 그는 하루 종일 움직였지만 조금 멀리서 그를 지켜보니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었다.





삶에는 지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잠시 멈추어 서서 돌아온 길과 발자국을 찬찬히 되짚어보는 것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 정리 과정에서 다른 이들의 발자국이 나 있는 방식이나 그들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다음 발을 내딛을 곳은 지나온 자기 길의 연속일 뿐, 누군가의 발자취와 동일하거나 평행해야 한다는 마음은 홀로 걷던 길 어딘가에서 불청객처럼 주워 올린 불안감인 까닭이다.


발을 뻗어야 할 방향을 알기 위해선 자신이 마지막으로 내디딘 발자국의 모양과 나 있는 방향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그 전의 발자국까지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다.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고자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는 연어처럼.




어쩌면 생각이란 정리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천덕꾸러기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백 번 다짐해도 이백 번 흔들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생각이니 집안일처럼 아무리 정리해도 끝이 없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집안일을 멈출 수는 없다. 다음주에 입을 옷을 준비하기 위해 세탁을 하고, 내일 밥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기 위해 설거지를 하는 것처럼 -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란 항상 다음에 일어날 일, 다가올 내일을 자연스럽고 원활하게 맞이할 준비이자 마음가짐이 아닐까.




삽화 : Cover . Susan Ford 作 / ⅰ. Leonid Afremov 作 / ⅱ. Matthew Hasty 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