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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Mar 02. 2016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VIII

'재회'


 그가 돌아왔다.


 약 3개월 만에 녀석이 돌아온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맞이 준비로 몸과 마음이 바빴다. 꼬질꼬질할 것이 분명했기에 돌아오자마자 목욕 스케줄을 잡아두어야 했고, 그간 제노가 없어서 집안 여기저기 널브러두었던 물건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했다. 배변판과 배변 패드는 물론이고 제노의 간식, 장난감, 사료, 물티슈, 산책용 배변봉투 등등의 물품들도 다시 구비했다. 맥반석 얼음 침대를 한겨울에 다시 꺼내는 일이 있을 줄이야..


 '나는 지금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군대 보내 놓은 아들이 첫 정기 휴가를 받아 집에 돌아와도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거나 정성을 다 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무엇 하나 빼놓지 않으려 꼼꼼하게 체크하며 열의를 다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든 생각은, '아, 내가 제노를 참 많이 기다렸구나!'


막바지 준비로 한창이었던 대망의 귀가 당일 오전, 애견학교 소장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 출발합니다~ 제노가 이제 차를 아주 잘 타요!"  개가 차를 잘 탄다는 건 좋은 일이겠지...?


조수석에 탄 그가 돌아오고 있다 - 파란 목줄에 주목

함께 받은 사진 속의 제노는 까칠한 표정의 사진에서도 꼬릿꼬릿한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야성미? 야생미?를 풍기고 있었다. 마침 옆에 있던 제노 엄마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그녀는 뒷목을 잡으며,


"못 살아... 진짜 오는구나.. 이렇게 꼬질꼬질해져서는.."


뒷좌석에 있으니 정말 부담스럽게 퉁글퉁글하구나....




 제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러니까 서울에 돌아와 처음으로 한 일은 참 제노다웠다. 목욕이 끝나면 곧바로 산책을 시키고 집에 돌아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산책용 목줄을 챙겨간 터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목줄을 채워서 동물병원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제노가 투쾅!(실제로 이런 소리가 난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분명 소닉붐과 비슷한 그런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하는 소리와 함께 목에 착용하고 있던 목줄을 터뜨리고 뛰쳐나갔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제노가 착용한 목줄은 50kg 개들도 1년씩 사용이 가능한, 튼튼한 대마(hemp) 재질이었다. 신이 난 제노가 순간적으로 가속을 하면서 목줄의 강화 플라스틱 연결부가 연결된  산산조각 나 버렸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목줄을 끊고 자유로워진 허스키라니! 하실 분들도 있을 테지만 제노는 귀여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기껏 목줄을 탈출해놓고는 고작 동물 병원 앞에 놓인 플라스틱 골든 레트리버 모형으로 달려가 그 볼에 뽀뽀를 하다가 아빠에게 붙잡혔다. 정말이지 함께 있으면 한 순간도 심심할 틈이 없는 녀석이다.


 소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제노를 목욕탕에  데려다준 뒤 다시 데리러 갔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내 모습을 보고 반가워하는 녀석을 억지로 무시하고 목욕비를 결제하는데 어쩐지 평소보다 금액이 비쌌다. "평소보다 비싸네요? 가격이 올랐나 봐요"라는 내 물음에 돌아온 답은, "제노가 너무 지저분해서 샴푸가 두 통이 들어가는 바람에요.... 그렇게 씻겼는데도 군데군데 물든 색은 아직 덜 빠졌어요 ^^;;;;"


아.... 네......

그렇게 제노를 데리고 나온 나는 '재회의 산책'을 시작했다.




 녀석은 초흥분상태였다. 아빠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사실. 서울에 돌아왔다는 사실. 오랜만에 함께 산책을 한다는 사실. 뱃속이 비어있다는 사실 등등 모든 요소가 복합되어 흰 털뭉치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줄을 잡고 있는 잠깐 동안 분명하게 느낀 건 녀석의 끄는 힘이 훨씬 더 강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산책줄을 잡고 있다가도 순간순간 으헉!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나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돌아온 제노와의 첫 산책! 목욕 직후라 조금 뽀얗게 보인다.


 자동차 여행으로 피곤할 텐데, 그리고 목욕을 마친 직후인데 왜 굳이 산책을 데리고 간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책'이란 인간의 시각과는 달리 반려견에게 있어 삶의 모든 것을 절절하게 드러내는 장場이기 때문다.


 짧 30분에서 길게는 두 시간 정도의 산책을 하다 보면 자신의 반려견의 건강 상태나 심리 상태가 어떤지, 성품이나 관심사가 전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지금 무엇을 원하고 또 이제껏 무엇을 필요로 해 왔는지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다. 특히나 오랜 기간 떨어져 있었던 나는 제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기에 녀석의 목욕 다음 첫 스케줄을 산책으로 정한 것이었다.


 요즘 날이 춥다 보니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분들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는 녀석들 대부분이 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 물론 그중에는 실내 생활을 더 좋아하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꼬리를 흔들며 신을 내는 녀석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반려'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존재와 함께하려면 아빠, 혹은 엄마만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에게 조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가 그렇게 좋냐! 아빤 팔 빠지것다..




 몇 가지 달라진 점을 파악하고 충분히 산책을 시킨 나는 제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제노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전날 밤부터, 그리고 아침부터 긴장 중이었다. "이제 슬슬 들어가려는데, 괜찮겠어?" 내 물음에 그녀는 올 것이 왔다는 뉘앙스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그래.. 들어와야지."


  일반적으로 그저 강아지를 다시 데려온 상황이라면 그녀와 내가 그렇게까지 긴장하고 마음의 준비나 대비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우려한 부분은 바로 새로운 가족인 '아기'였다. 다들 알다시피 제노는 25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중대형견이다. 아무리 착하고 순하고 악의가 없어도 작고 무력한 아기에게는 늘 위협적인 존재수밖에 없다. 우리는 오랜 시간 깊이 고민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제노를 어딘가로 보낸다거나 포기한다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화두는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였다.


제노 -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첫날 저녁!


 녀석과 떨어져 있는 동안 허스키에 관련한 외국 책들과(한국에는 실질적인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더불어 반려견과  어린아이를 함께 양육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정보를 찾고 또 공부했다. 그렇게 연구한 내용들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견종에 따른 기본 성정(공격성, 방어본능, 영역본능)과 반려견 개체로서의 성품이다.


 다행인 점은 순종 허스키에게는 (순종이라는 말을 굳이 붙인 이유는 허스키 역사상 늑대와 교배되면서 외관은 크게 변하지 않고 공격성만 심각하게 증폭된 녀석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역본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방어본능이 발동할 상황이 거의 없음을 뜻하며 결론적으로 공격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사실 제노는 이제껏 혼나거나 궁지에 물린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무언가를 물거나, 공격하거나, 반항적인 태도를 취한 적이 없었다. 성품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녀석이었다.


착하고 순하고를 떠나서 그냥 다 좋아한다.. 낙천에 극한 부호를 붙이면 바로 김제노


 하지만 아직 어린 아가와의 첫 조우는 부모로서 걱정을 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전문서적에서 충고하기를 새로 아이가 태어나거나 새로이 반려견을 데리고 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첫 조우'라고 했다. 즉  어린아이와 반려견의 첫 만남이 앞으로의 모든 흐름을 결정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조언을 충실하게 따랐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준비 1 :  우선 반려견을 지치게 만들 것. 뛰어놀게 하거나 산책 혹은 수영을 시켜서 첫 만남에서 야기될 수 있는 흥분 상태를 최대한 억제하고 그 가능성을 줄여두어야 한다.


준비 2 : 반려견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모양새가 중요하다. 반려견이 집에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데려오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아이가 먼저 집에 있는 상황을 만들어두고 산책이나 외출 등을 나갔다 돌아온 반려견으로 하여금  어린아이를 '밖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집에 기거 중이었던 존재'로 인식을 시켜야 한다.


준비 3 : 첫 대면에서 지나치게 아이와 반려견 사이를 갈라두려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처음 접하는 아이에게 접근해 관찰하거나 냄새를 맡으려는 반려견을 지나치게 제지하면 필요 이상의 흥분 상태나 호기심을 야기할 수 있다. 충분히 냄새를 맡게 해 주고(얼굴, 손 쪽 제외), 아무래도 불안하면 아이가 입고 있던 옷이나 기저귀를 통해 체취를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준비 4 : 첫 만남에 대해 긴장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어선 안 된다. 반려견도  어린아이도 분위기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나친 긴장감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두 존재를 예민하고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하나의 '일상적인 일'로 여기면서 첫 만남을 계획한다.




 여전히 이 사회에서는 반려견과  어린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에 대해 찬반이 많이 나뉜다. 아이의 정서와 면역에 좋다는 의견, 예측불허하고 균이 많은 야생동물과 함께 키우는 리스크가 과연 감수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의견 대립이 끊임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찬성 반, 반대 반이다. 면역적인 이야기는 제쳐 두고서라도 정서적인 부분에서의 긍정적인 면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입장을 옹호할 필요도 있다. 첫째는 종種, 그리고 개체에 따른 반려견의 기본적인 성정(성격)이고, 둘째는 부모로서 어디까지 공부하고 케어하고 노력을 쏟을 수 있는가에 대한 '책임감'이다.


육아育兒와 육견育犬의 공통점은 모든 것이 부모의 '책임감'과 역할에 달려 있다는 것.


 반려견과 함께 아이를 키우다가 큰 사고로 이어진 여러 사례들을 접했는데, 모든 사례의 공통점은 아이와 반려견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부모의 '무책임'과 '방임'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는 점이다. 어디서 데려온지도 알 수 없고 친해지지도 않은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 근처에 걸음마 하는 아이를 방치해둔다거나, 반려견이 평소 침대로 사용하는 빨래 바구니에 생후 사흘 된 아이를 놔두고 부모는 다른 일을 본다거나 하는 비상식적인 상황 말이다.


따라서 항상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않고, 반려견은 스트레스나 체력이 지나치게 쌓이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운동을 시켜주거나 야외활동을 시켜줄 수 있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아이와 함께 반려견을 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극히 반대하는 바이다.





 그렇게 우리 아가와 제노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그간 걱정하고 노심초사한 마음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우호적이고 무심하면서도 따뜻하게 만남이 이루어졌다. 배고프고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제노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의 모습을 인지했음에도 당장의 허기와 피곤함이 우선이었다. 발 쪽의 냄새와 기저귀 냄새만 킁킁 맡더니  이후부터는 항상 집에 있던 가족인 것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 이어질 20화에서 묘사하겠지만, 제노는 곧바로 아기를 '사물'이 아닌 '가족'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 같다.


 잠들 시간이 된 아가는 먼저 침실로 향했고, 돌아오신 제노 씨는 오랜만에 게걸스러운 식사와 간식 탐닉, 음료를 마쳤다. 그리고 집에 와서 첫 활동을 개시했다. 나는 녀석의 '첫 활동'에, 고백하건대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한 살 생일 파티를 마치고 곧바로 3개월간 떠나 있던 제노는, 지쳐서 소파에 앉아 있던 내게 다가왔다. 아치를 그리고 있는 내 두 다리와 소파 사이의 공간으로 슬슬 코를 들이밀더니 기어이 비집고 들어와 살며시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코로 길고 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치 '이제야 겨우 집에 왔군.'하며 안도한 듯이.


여기가 내 집이오만 뉘신지


"여기가 네 집이고, 우리가 네 가족이란다. 잘 왔어, 제노!"




 ★우리 제노가 변했어요


- 배변을 이젠 더 이상 실내에서 안 해요. 그래서 아빠가 하루에 꼬박꼬박 두 번씩 출근 전 새벽과 퇴근 후 저녁에 산책을 시키면서 용변을 해소한답니다. (평일기준  아침저녁 각 1시간씩)


- 산책을 한 시간 두 시간씩 해도 더 이상 지치지 않아요.

- 힘이 1.7 배 가량 세졌어요.

- 다른 개들이나 사람들과 더 잘 놀아요.

- 밥을 더 잘 먹어요.

- 원래 짖는 소리 하루에 한 번 듣기 힘든데, 더 과묵해졌어요. 일부러 짖게 만들지 않으면 하루 종일 아무 소리 안 내고 지내요.

- 몸매가 더 이상 드럼통이 아니라 역삼각형이랍니다.


뻗은 시베리안 허스키에 손도장을 남기다


☆우리 제노가 안 변했어요


- 그 이외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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