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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영 Jun 10. 2022

100개의 달에게 빌기

10개월 전 나의 마음으로, 지금의 최선을 선택할 수 있기를

시간이 참 빠르다. 이 글을 쓴지도 벌써 10개월이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 가끔은 희망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절망과 상실의 기억이 더 많았고, 조금은 무뎌졌지만 무딤이 없었다면 더 자라 버린 종양을 확인하고 줄어버린 선택지를 인정하는 근 2주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거다. 그리고 계속 갱신될까? 

상황은 더 안 좋아졌지만 마음을 다시 다져보며,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의 최선을 하자. 



2주의 휴가를 내고 친정 가는 길, 20년 가까이 살았던 아파트에 다다랐을 때 계단을 오르는 노부부를 보았다. ‘우리 엄마 아빠도 저렇게 다시 함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My Parents>가 떠올랐다. 

데이비드 호크니, My Parents (1977)


뇌종양 수술 후 아빠가 퇴원하시던 날, 4년 넘게 묵혀둔 안식휴가를 쓰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고작 2주의 휴가 동안, 그중에 열흘 정도 시간을 낸다고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해지던 날의 언제부턴가 아빠는 뭔가에 집중하면 주위의 다른 소리는 듣지 못하고, 가끔은 말을 하면서 단어를 잘 생각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단어를 내뱉기도 하셨다. 엄마도 나도 치매기가 오는 걸까 생각했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었기에 완치되었다고 생각했던 암이 뇌로 전이되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7월이 되던 금요일 저녁, 엄마는 퇴근하고 전화 달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평소와는 다른 연락에 불안한 마음으로 걸었던 전화 넘어, 아빠가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상하게 침착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는 순간,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었다. 


주말 동안 여러 검사가 진행되고, 의사 선생님과 가족 면담을 갖고, 바로 다음날로 잡아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 재활 치료, 방사선 치료......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뇌종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기에, 수술 전에는 그래도 수술을 못할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다 싶었고, 수술이 잘 되었다기에 폐암 때처럼 한두 주 후면 이전과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코로나로 상주 보호자 1명 외에는 면회도 되지 않아, 그 한 달 동안 아빠 얼굴은 수술 전후로 짧게 두세 번뿐이 볼 수가 없었는데, 그동안 아빠는 머리숱 가득 웃는 얼굴로 두 다리로 서서 밥 챙겨 먹으라고 손 흔들며 인사하던 모습에서 민머리 검붉은 얼굴에 혼자서는 오른 팔다리를 가누지 못하고 말도 어눌하게 하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환자가 되어 있었다. 그 전에도 속은 이미 환자였을 것을, 그저 우리만 몰랐던 거겠지. 아빠 머릿속은 이미 선명하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My Parents> 그림 속 배경의 빛바랜 녹색이 되어 가고 있었던 거다.


다시 그림을 들여다본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엄마 아빠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 한 달 내내 상주 보호자로 갇혀있다시피 했던 엄마는 그림에서의 꼿꼿한 모습이 아닌 몸과 마음이 너무도 지쳐 보이는 모습이다. 아빠도 그림에서와 같은 항상 메모하며 뭔가에 몰입하던 모습이 아니라 팔다리를 떨어트리고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언제쯤이면 조금이라도 예전과 같은 생활을 찾을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소중한 2주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보고자, 가족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미션으로 14일 챌린지를 함께 했다. 평소 일하면서는 그렇게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가족들에겐 왜 그리 인색했던지. 그리고 휴가를 마무리하는 오늘, 휴가 때처럼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는 없지만 그림 속의 선명한 꽃처럼 아름다운 말들을 더 늦기 전에 더 많이, 더 자주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다져본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이 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분명 있을 테니까. 



from. 난다 편집장님

저는 요즘 들어 나이먹어간다는 것에 생각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프고 병들고 백 퍼센트 확률로 세상과의 이별을 겪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 소영님의 이야기에 적어주신 구체적인 조각들이 짜임새 있게 얽히며 이 글을 쓴 사람의 감정과 상황 속으로 초대되어 ‘즐겁게’ 읽었어요. 참 잔인하기도 하죠. 누군가가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고 글을 쓰더라도, 그것을 ‘쓰고 읽을’ 때에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일이요.

그림 속 빛바랜 녹색은 그림에 붙잡혀 있는데,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붙잡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감사의 말, 사랑한다는 표현이 나에게서 너로 그저 날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와 버텨낼 수 없는 시간에 꺼내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처럼요. 글 잘 읽었습니다.


* 뭉클한 선택 <너랑 나랑 노랑> 글쓰기 이벤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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