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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영 Sep 30. 2022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2022년 9월 30일 아침 기록 

2022년 9월 30일 아침 9시. 브런치를 연다. 


 원래 오늘 계획은 알람 없이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눈이 떠질 때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침 일정이 없는 드문 하루. 그러나 역시 그것이 계획이 되는 순간, 그대로 되지 않을 때의 초조함과 답답함이 있다. 계획 따윈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저 되는 대로 맡기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 그렇게 보내보기로 했다. 


 역시나 남편보다 일찍 눈이 떠졌고, 침대에서 밍기적 거리다 오늘도 나만 알람을 듣고 여전히 쿨쿨 잠에 빠진 남편을 깨웠다. 그러고도 침대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남편을 배웅했다. 충분한 수면을 위해 서로의 휴일에 출근하는 상대를 굳이 배웅하지 않기로 한지 오래지만, 오늘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거운 몸을 벌떡 일으켜 나올 때가 가끔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루. 당직이라니, 얼마나 피곤할까. 무탈한 하루가 되기를.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의 24시간 나는 오롯이 혼자다. 어제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친정에서 이틀 더 있을까, 여기 있는다고 내가 뭔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얼마나 앞으로 더 있을지 모를 엄마 아빠와의 그저 조용한 하루하루. 그렇다고 여기까지 온 남편을 밥만 먹고 혼자 보내기도 그렇고, 절뚝대는 다리로 나중에 혼자 집에 갈 엄두도 사실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젯밤에 왔고, 오롯이 혼자의 9월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어제 사온 프릳츠 빵을 꺼냈다. 프릳츠 머그에 마셔야지 하며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브런치를 열었다.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된 것에는 몇 가지 신호가 있었다. 

 오늘 아침 일찍 희소코치님의 글이 배달되었다. 침대에 누워 한줄한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시간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고 기록하지 않으면 그저 흘러간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남기고 싶었던 나의 순간들을 피곤과 게으름을 앞세워 그냥 보냈던 것들, 그리고 너무나 기록을 좋아하지만 삶을 돌아보는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아빠를 떠올렸다. 

 어젯밤엔 오랜만에 Green Day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들었다. 며칠 전에 한 단톡방을 통해 전달받았는데, 바삐 지내느라 잊고 있다가 불쑥 생각이 나서 찾아 들었다. 이걸 들으면서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반응했다. 눈과 가슴에서. 음악을 남길 순 없어도 글은 남길 수 있지, 그렇지. 

 월요일 아침엔 이건 꼭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있었다. 그날 나는 병원을 들러 출근했다. 지난 토요일 밤에 아주 살짝 발을 접질렸는데, 얼음찜질을 하고 약을 바르고 해도 영 괜찮아지지 않았다. 몇 년 전 제주 출장에서 크게 다쳤던 곳이라, 그때만큼의 고통이나 변화는 없었지만 걱정이 되었다. 다친 발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는, 이번 주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될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회사에는 사람의 들고남과 함께 워크숍과 회식이 줄줄이 있어 재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회사 일로 하루 미룬 아빠 병원을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다. 항암약은 딱 28개, 그게 떨어지는 날이었다(약물항암치료도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에 의미 없게 되어버렸지만..). 일요일 오후 버디코칭을 하며 걱정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고 일단 걱정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기 위해 할 일을 해치우고 월요일까지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병원을 갈까 찾아보고 출근길에 들르기 제일 수월해 보이는 곳으로 골랐다. 월요일 아침에 보낼 부탁의 톡을 미리 적어두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톡을 보내고 병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렸는데 2층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급했다. 일부러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나왔는데, 빨리 가서 접수를 해야 하는데, 회사에 많이 늦으면 안 되는데. 쩔뚝이며 문을 찾다가 떠올랐다. '이건 천천히 가라는 신호다.' 나 스스로 나를 재촉한다. 주변에서도 나를 재촉한다. 나는 그걸 다스리지 못한다. 그런 나의 하루는 종종걸음이다.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니, 브레이크를 건 거다. 다행히 골절은 아니고 인대가 늘어나고 염증이 생긴 정도라 몇 주 고정시키고 지켜보자는 말을 듣고 출근을 했다. 회사에 거의 도착했는데 저 앞의 신호등에 파란 신호가 줄어들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뛰었을 것을 고민을 하며 횡단보도 앞에서 한 발자국 내디뎠다가 다시 뒤로 돌아왔다. '지금의 나는 이걸 건널 수 없다. 천천히 가자.' 


 시간은 참 빠르다. 9월도 그랬다. 8월 말 호캉스 여름휴가의 여유가 금세 잊힐 만큼 회사에서는 다시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CPC 과정은 듣던 대로 만만치 않았다. 아빠 병원을 가는 날은 더 늘어났고, 그 사이에 나의 갑상선 정기검사 일정이 도래했지만 가지 못했다(역시 미리 병원을 아빠 병원으로 옮겨두었어야 했나). 그래도 중간중간 산책을 했고,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며, 추석 연휴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책장의 (임시) 정리에 성공했다. 

 10월도 걱정과 기대가 공존한다. 아빠 추가 검사 결과는 나 혼자 가서 들을 예정이다. 의사 선생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두렵다. 이 두려움이 어제오늘 머릿속에 가득하다. 이 일정을 빼느라 코칭 과정 재수강 일정을 취소했다. FEN의 복습과 오프라인 수업에 대한 기대를 담아 호기롭게 신청했지만,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하다. 발이 회복되는 데 얼마나 걸릴지도 걱정이다. 그에 따라 내가 기대하고 있는 만남의 시간들을 얼마나 가질 수 있을지가 달라지니까. 그래도 10월엔 단풍이 든다. 작년 10월 마지막 밤 불멍 영상도 다시 꺼내봐야지. 천천히 가자. 


여기까지, 2022년 9월 마지막 날 아침, 나를 깨운 것들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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