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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영 Jun 03. 2023

5월 23일의 기록

아빠가 떠나던 그날, 나의 하루

 5월 21일 일요일 새벽, 아주 긴 글을 쓰다 눈물범벅이 되고는 발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틀 뒤, 아빠가 떠났다.

작가의 서랍

 

 5월 23일 화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 수목금토일, 5일 연속 수업을 신청해 둔 스터디위크를 앞두고 잡아둔 미팅들이 줄지어 있었다. 점심시간엔 샌드위치를 테이크아웃해서 먹으며 코칭 세미나에 참여했다.

아빠는 며칠 전부터 변을 자주 많이 본다 했다. 그날 아침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간호사 선생님 말씀에 아빠 친구들에게도 연락했다는 엄마의 메시지가 있었다. 4시 미팅 진행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톡이 와있던 것을 미팅에서 과정으로, 그리고 다시 미팅으로 옮겨가느라 놓쳤더랬다. 조금 더 미팅에 참여하려다가, 이번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짧게 의견을 남기고 회의실에서 나와 짐을 챙겼다. 급히 퇴근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야 할지 택시를 타야 할지 고민하다 택시를 불렀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5시를 막 넘긴 시간이었는데, 경부고속도로는 이미 막히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가는 길에 스터디위크의 과정들을 연기하고 예정되어 있던 일정 취소를 위해 필요한 연락을 돌렸다. 6시가 되어 병원에 도착했다. 호스피스 병동 앞에서 자가진단키트를 하고 병실로 갔다. 원래 계시던 병실이 아닌 임종실이었다.


 아빠는 눈을 크게 뜨고 계셨다. 언제부터 그렇게 애쓰고 있었는지 한 쪽 눈에는 핏줄이 서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아빠는 오랜만이었다. 몇 날 며칠 한두 시간 외엔 잠을 자거나 눈을 감고 있던 아빠가 오늘은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고 했다. 차가운 손을 잡아드리며 눈을 많이 맞추려 노력했다. 무서워하며 할 말이 많은 듯한 눈이었다.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드리고 싶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아빠 눈을 바라보다 보면 눈물이 났다. 그러면 잠시 자리를 떴다. 간호사 선생님이 몇 번 왔다 갔다 하셨고, 얼마나 이 상태로 계실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두 시간쯤 흘렀을까. 나는 그날은 괜찮을 줄 알았다. 아빠에게 일주일 뒤면 다시 여의도성모 호스피스를 갈 거라고, 교수님도 아빠를 보고 싶어 하셨다고 전했다. 노트북을 꺼내 마무리 못하고 온 일들을 마무리 짓고, 배고파 보이는 조카를 보며 저녁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9시 반이 넘었고, 간호사 선생님은 상주보호자인 엄마 외에 한 명만 더 남고 귀가를 권유하셨다. 내가 남기로 하고 가족들을 보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가족들이 인사를 하는데 아빠가 눈물을 보이셨다.


 기저귀를 갈고 땀에 젖은 병원복을 갈아입히는 것을 도왔다. 그러고나서 엄마와 식은 보호자식사와 남편이 사다준 김밥을 먹었다. 한입 넣고 아빠를 살피고 또 한입 넣고 아빠를 살폈다. 반대쪽 눈도 조금씩 핏줄이 서고 있는 것 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동그랗게 뜬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계셨다. 집에 도착한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아까와 비슷한 상태임을 알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날은 괜찮을 줄 알았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쉴 자리를 만들었다. 아빠는 졸린 기색으로 조금씩 눈을 감으셨다. 엄마는 아빠를 토닥토닥하고 계셨다. 호흡기를 보니 아까보다 공기가 빠져 보였다.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가래 때문에 가쁘던 숨이 차분해져서 그렇다고 하셨다. 이제 조금 주무시려나보다 싶어 아빠 옆에 앉아 그날의 인증을 했다. 나도 참, 그 와중에도 인증이라니. 책이 없어 멤버들이 남겨준 사진들을 보는데 아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높은 영혼을 지닌 존재가 되어 곧 영원한 평화를 얻을 것이다.

             -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 p.77



 그리고는 아빠를 바라봤다. 새근새근 잠이 드는 모양이었다.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그러다 한번 얼굴을 찡긋 했다. 얼마 전 봤던 기운 없이 하품을 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조금 있다가 한번 더 얼굴을 찡긋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찡긋. ... 그리고는 호흡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도 들썩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아빠를 토닥이던 엄마를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을 불렀다. 그렇게 아빠는 떠났다.


 오빠에게 전화를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켰다. 눈물이 나고 떨렸지만 침착하려 했다. 오빠를 기다리며 봉안당을 계약할 때 도움을 받았던 회사 상조에 연락했다. 장례식장과 화장장을 먼저 잡아야 했다. 아빠를 더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지금 있는 병원의 장례식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작은 방밖에 남아있지 않아 다음날 오전 다른 방이 빌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3일장으로는 화장장 예약도 꽉 차있다고 했다. 어차피 오늘은 얼마 남지 않았고 장례식장도 늦게 비니 4일장을 하기로 했다. 화장 시간도 골라야 했다. 그때부터 아빠와의 이별에 대한 선택과 결정의 시작이었다.


 오빠가 도착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오셨고, 아빠를 여기저기 살피셨다. 그리고 임종을 선언하셨다. 그렇게 공식적으로도 아빠는 떠났다. 5월 24일이 되기 11분 전이었다.



ps. 장례를 치르며 많은 생각들이 남았지만, 오늘은 아빠의 장례에 함께 해주신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의 명복과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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