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by 에리히 프롬
대학을 떠나고 나서는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또한 언젠가 읽어봐야지 했지만 읽지 않았던 책 중 하나였다. 책장 한편에 모셔두고 혼자서는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책 한 권을 또 읽게 되어 뿌듯하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p.5)
'사랑' 만큼 여러 상황에서 쓰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단어는 많지 않다. 머리말에서도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을 풀어내려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나도 혼자 읽었다면 그랬을 것처럼) 이 책을 읽다 말고 덮었을 많은 독자들이 그것을 그냥 지나쳤을 뿐.
나에게 이 책은 '사랑은 기술인가?' - YES! 를 이야기하는 첫 장의 임팩트 + 난해함의 산을 넘고 넘은 '사랑의 이론'과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의 실마리를 준 '사랑의 실천'으로 요약된다.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가정에 이르게 하는 세 번째 오류는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 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p.13-16)
우리가 흔히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이러한 오류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고, 알고 나서도 남들의 연애에 대해 듣고 이야기할 때나 혹은 스스로의 연애에서 구석으로 몰리는 순간이 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오류를 범하게 된다.
2장에서는 연인 간의 사랑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절반은 모성애에 대한 것이었는데, 지금보다는 언젠가 어머니가 된 후에 다시 보면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장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처한 환경과 그것이 어떻게 사랑을 어렵게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2장과 3장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엔 어려웠기에 말미에 인상적인 구절들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4장은 실천이라는 단어에서처럼 조금은 실용 차원으로 내려온 이야기들이었다.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훈련, 정신집중, 관심, 인내를 가지고 실행할 것. 그 중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신집중'이라는 것이 마음 챙김 mindfulness과 맞닿아 있어 인상적이었다.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던 그것. 역시 수련이 필요하다.
정신 집중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독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사실상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사랑의 능력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p.152-3)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신 집중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행해야 한다. (p.155-6)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민감할 수 있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나는 우울한가?' 라고 묻는다.
... 이러한 일을 알아차리고, 이러한 일을 합리화하는 무수한 방법이 있더라도 결코 합리화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p.157)
그러고 나서도 우리는 더 어려운 경지에 이르러야 사랑의 기술을 갖추게 된다. 말 그대로,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한다.
...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모든 상황에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내가 객관성을 읽고 있는 상황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p.162)
사랑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 곧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능력과 그 신뢰성에 대한 신앙이다. (p.166)
신앙을 가지려면, '용기', 곧 위험을 무릅쓰는 능력, 고통과 실망조차도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필요하다. ... 사랑받고 사랑하려면 용기, 곧 어떤 가치를 궁극적 관심으로 판단하는 - 그리고 이러한 가치로 도약하고 이러한 가치에 모든 것을 거는 - 용기가 필요하다. (p.169)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은 결국 나를 아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 사랑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갖는 것, 그러한 마음으로 가족을, 연인을, 친구를, 사회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결코 쉽지 않은 기술을 얻기 위해 우리는 매일 '사랑' 을 한다.
* '2. 사랑의 이론'과 '3.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p.40)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의 '행위'에 있다. ... 그러나 사고를 통한 지식, 곧 심리학적 지식은 사랑의 행위를 통해 충분한 지식을 얻기 위한 불가결한 조건이다. ... 나는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인간을 객관적으로 알게 될 때에만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궁극적 본질을 알 수 있다. (p.51)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62)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p.81)
나 자신의 자아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만일 어떤 개인이 생산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오직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p.85)
모든 사람이 되도록이면 타인들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아주 고독하며, 분리 상태가 극복되지 못했을 때 필연적 결과로 생기는 깊은 확실성과 불안, 죄책감의 지배를 받는다. (p.120)
두 사람이 서로 그들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 ... 이와 같이 경험되는 사랑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그것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고 일하는 곳이다. ... 근본적인 문제는,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에센스 차원에서 경험하는 것이요, 각자가 자신들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서로 합일되는 것이다. (p.138-9)
* 트레바리 마음-옐로 1709-12시즌 두 번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