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by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처음으로 완독 했던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이야기였다. 다섯 달 만에 다시 읽게 된 이 책은 여전히 사랑과 연애, 결혼에 대해 기존에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생각들에 펀치를 날리는 느낌이 들면서도 처음 읽을 때는 지나쳤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든 미혼자인 나에겐 주위에서 주워들은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랑이 갖는 낭만을 넘어선 지 꽤 되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사랑과 연애가 갖는 낭만을 포기하기는 아쉬운 그 중간지점 어디쯤엔가 있는 듯?
각자가 가진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서른 초반까지도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어느 정도는 환상이 들어 있는 것 같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그렇지, 이럴 수 있어, 나도 이런 적이 있었어.' 라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그것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꽤 현실적이 되어버린 내 자신에 놀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외도에 있어서 만큼은 이럴 순 없다고 생각하며,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싶기도 했지만;)
책의 끄트머리에 나오는 애착이론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한가 싶으면서도, 실제로 많은 커플들이 이런 문제로 다투고 있으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학교에서 들었던 수업에서는 ‘분화’라는 용어를 써서 비슷한 설명을 해줬었는데, 분화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잘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함께 하고 있고 사랑하는 이 사람이 불완전한 사람임을,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러함을 이해하고 서로 지혜롭고 흔쾌하게 차이에서 오는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면, 걱정하는 것만큼 결혼생활이 힘들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이것도 낭만적인 희망일까. 일단은 해봐야 알겠다.
지난 시즌 이 책을 읽고 남겼던 독후감이다. 이번에 다시 외도 부분을 읽으면서는 ‘이럴 수 없어!’ 보다는 ‘우리는 왜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일까?’ 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라비는 외도를 했다. 걱정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커스틴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큰 후회를 했다. 본인이 무엇 때문에 그리 행동했는지 원인을 생각했다. 그러나 커스틴에게 말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외도를 하기 전까지는 내가 연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느낄 수 없었던 것일까. 외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해보기 전에 알 수 있다면 그 힘든 시간들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을 말이다. 지난 독후감을 다시 찾아보며 놀란 지점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일단은 해봐야 알겠다.” 라니. 이 얼마나 무모하게 도전적인가.
결혼이 단지 그 이수 과정에 등록한 사람에게만 중요한 수업을 해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준비는 예식에 선행하기보다 대개 10~20년 후에야 갖춰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건, 누구나 그러하고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다는 것. 인생을 수업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이 책을 만났다는 것.
이제 라비는 낭만주의 개념들이 재난을 낳는다는 것을 안다. 그의 준비된 마음은 완전히 다른 기준들에 기초한 결과다. 그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무엇보다 완벽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미쳤음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커스틴이 까다로운 게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항상 섹스는 사랑과 불편하게 동거하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이제 (평온한 날에는) 행복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가르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러브스토리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고, 영화와 소설에 묘사된 사랑이 그가 삶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랑과는 거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비와 커스틴의 스토리를 따라가면서도 알랭 드 보통의 해석 같은 문장들에 더 많은 밑줄을 그었었는데,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해석을 건너뛰고 읽어보니 결혼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체크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쭈욱 적어보았다.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지만,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만났다는 것에서 낭만주의로만 생각했을 결혼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수업을 들은 것 같아 조금 더 마음이 놓인다.
* 트레바리 마음-옐로 1705-08시즌 두 번째 책
* 트레바리 작가들 1709-12시즌 두 번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