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여행의 조미료

2017년 2월 23일, 여행 155일 차, 카이로

by 오상택

어제 고생해서 알렉산드리아행 표를 끊었다. 당일치기 여행으로 가는 여행이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여기서 어떤 일이 생기게 될지는 상상치도 못한 채로!



일정 : 카이로 - 알렉산드리아 (로마 극장 - 콰이트 베이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 그리고!



한국, 이집트 그 사이 이민호

카이로에서 두 시간 반 정도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항만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다. 도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화가 많이 녹아있는, 이집트에서는 보기 드문 느낌의 도시다. 대부분을 도보로 이동할 것을 계획하고 왔다. 역 이서 바로 나와 우측으로 돌아 조금을 이동하면 로마 극장이 있다. 이탈리아 로마의 그것보다는 당연히 규모도 작고 그 양식도 조금은 다르지만 여기가 이집트 인지 의심하게 하는 디자인으로 재밌는 느낌을 자아낸다. 재밌는 점이라면 이 곳에 사용된 돌들이 색이 조금씩 다른데, 색에 따라 각각 룩소르, 아스완 지역에서 온 것들이 있다고.

한참을 둘러보고 있을 때 즈음 내 쪽에 이집트 사람들 무리가 왔다. 아무래도 어제의 일 때문에 이집션이 좋지 않게 보이고 있었는데, 나에게 사진을 부탁하길래 그냥 찍어주었다. 사진 찍는 게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 남쪽 한국-그러니까 가끔 북쪽이랑 헷갈려서 김정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기에-에서 왔다고 하니 일행 중 한 명이 엄청나게 놀라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한국 문화를 너무 좋아하는 이집트 학생이었던 것! 이민호 때문에 한국 드라마를 엄청나게 봤다고... 짧은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몇 마디를 나누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도 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인도 이후에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까. 괜시레 이민호 님에게 감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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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있는 동안 그 친구와 몇 번은 더 이야기했다. 아직 어린 학생이어서 해외에 갈 일은 없지만 한국에 꼭 가고 싶다는 그 친구에게 언젠가 한국에 오면, 혹은 한국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면 알려주기로 했다. 이집트에서 한국을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고, 가정의 분위기에 따라 국외 출국이나 나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언젠가 이민호를 보러 오던, 한국을 보러 오던 한국에 꼭 오기를 조심스레 바라 본다.


지중해를 마주하다

로만 극장에서의 유쾌한 시간을 뒤로하고 알렉산드리아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콰이트 베이로 향한다. 알렉산드리아 근처 파로스라는 섬에는 커다란 등대가 있었으며 이는 현재 존재하는 등대의 원형이었다고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파괴된 후, 이슬람 왕조에서 이 파괴된 잔해로 알 락센 다리아 내륙에 만든 것이 콰이트 베이가 되었다고 한다. 등대가 있던 곳답게 가는 길은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는 이집트의 도시인만큼 각종 여유로운 풍경들이 펼쳐지는 재미있는 곳이다. 콰이트 베이에 가까워질수록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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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던 등대의 잔해로 만들어진 콰이트 베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내가 본 콰이트 베이는 그 흰 대리석들이 과거의 세월이 지나고 오늘의 햇빛을 반사시켰기에 완벽한 흰색보다는 살짝 빛이 바래고 있었다. 마치 옛 자신의 화려했던 시절이 지나갔다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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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아있는 포신들을 전시해놨고, 성벽에 올라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다. 오는 길이 힘들고 더웠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한편으로는 이 바다를 타고 로마 문명이 전해 졌으리라 생각해보면 당시 로마 시대가 얼마나 융성했는지도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행의 조미료 한 꼬집

마지막 둘러볼 곳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았다던 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콰이트 베이에서는 약 3km 정도 떨어져서 걸어가기는 쉽지 않은 위치이다. 버스를 탈만한 곳으로 걸어가다 웬 택시기사 아저씨가 다가와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해서 내버려두었더니 이런저런 모스크로 나를 안내했다.

IMG_2621.jpg 터키의 블루 모스크 다음으로 큰 모스크라고는 하는데, 그 보다는 나에게 50파운드 사기 치려던 곳으로 밖에는...

모스크 어디에도 입장료를 받지 않아 무료겠거니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서 자기한테 50파운드 (한화로 3500원)를 달라는 것 아닌가! '이것도 이집션, 저것도 이집션'을 하루에 몇 번을 느끼는지. 내가 버럭 화를 냈더니 미안하다며 그냥 사라진다. 이런 모습을 보면 또 그냥 잘 돌려보내면 됐는데 너무 했나 싶기도 하다. 지나가는 미니버스를 잡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도착했다. 지금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리모델링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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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았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숨은 한글을 찾아보자!

전면 건물의 벽면에는 세계 여러 가지 언어가 적혀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았던 과거의 모습은 이제 없지만, 그때를 되새기며 만들었으리라. 벽에서 한글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 내부를 들어가기 위해선 가방을 맡겨야 했고 돌아가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바로 걸음을 재촉해서 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 여행 중 현재까지 가장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역으로 가던 중 한 제과회사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과자를 공짜로 주는 이벤트였고, 과자를 먹고 바코드를 찍으면 추첨을 통해 과자 10~20개 또는 전자기기 등을 주는 이벤트였다. 줄이 그렇게 길지 않았어서 잠시 기다리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줄을 섰다. 잠시 사진을 찍을까 하고 사진을 찍고 줄을 섰다가 생각보다 줄이 줄지 않아 그냥 가기로 마음먹었다. 기차 시간이 19시였고 그때가 18시였으니 조금 서둘러 걷고 음식을 사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찾았는데, 어? 지갑이 없다! 줄을 서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지 한 1~2분이 지난 걸까. 얼마 안 되었으니 내가 떨어뜨렸을 것 같다는 생각에 줄을 섰던 자리에서 이집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발밑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지갑이 없다. 아무래도 줄을 서는 동안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있었는데 뭔가 팀워크로 나의 지갑을 가져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왜 지갑이 없지, 왜 지갑이 없지'이 말만 계속 반복했었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IMG_2661.jpg 이게 사고 나기 바로 직전에 찍은 마지막 사진.... 내 지갑은 어디에 있을까. 이 사진을 보면 아직도 떠오르는 내 지갑 생각

7시 기차를 타야 안전하게 호스텔로 돌아갈 수 있기에. 문제는 지갑이 없으니 현찰도 하나도 없고 카드도 없었다. 오직 미국 달러만 있던 상황. 일단 시간도 많이 써버려서 바로 우버를 불러서 역으로 갔다. 다행히 5분 정도 남기고 바로 역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인터넷으로 바로 카드를 정지했기에 더 이상의 문제는 생기지 않을 듯싶었다. 기차를 달러로 계산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기차 요금은 반드시 이집션 파운드로 내야 한다'라는 역무원의 말에 한참 당황했다가, 한 이집션 할아버지가 내 상황을 듣고 '그런 일이 생기게 해서 미안하다. 우리 형제가 그릇된 일을 한 거니 너그러이 용서해달라. 이 돈으로 카이로로 돌아가라'라고 말해주며 기차표값보다 조금 더 되는 돈을 주셨다. 기차에 타고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이집션 화폐를 다 들고 다녔기에 한국돈으로 약 23만 원 정도가 사라진 것이었고, 체크카드 두 장-그러니까 한장은 예비 카드인데, 비자 마스터 각각 하나씩 갖고 있어야 불편함이 없었깅-이 사라졌다. 근데 그것보다 더 슬픈 건 나의 하나뿐인 한국 학생증과 우연이가 나에게 주었던 영국 오이스터 카드, 곧 가게 될 터키 이스탄불 까르뜨 그리고 홍콩에서 Hugo와 함께했던 추억이 들어있던 옥토퍼스 카드도 사라진 것. 그 외에 몇 장의 개인적인 사진과 여권사진들이 없어진 것도 굉장히 안타까웠다. 여행 중에 무언가가 없어지는 것은 사실 굉장히 흔한 일이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없어지니 너무 불편하고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우버를 통해 빨리 기차를 탈 수 있었고, 이집션 할아버지의 너무나도 친절한 도움 적에 그 당혹감이 더 커지진 않았다. 그냥, 밋밋할 뻔 한 여행에서의 조미료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원칙적으로 소심한 나로선 한 동안 없어진 지갑, 없어진 물건들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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