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인류의 위대함

2017년 2월 24~26일, 여행 156~158일 차, 카이로와 아스완

by 오상택

지갑 분실은 치명적이었다. 당장 결제하던 모든 수단들이 한 카드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분실신고 이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것이 사실상 멈추게 되었으니까. 다행히 가방에 보관하던 임시 카드가 한 장 더 있었기에 그것으로 출금은 응당 될 것이고, 결제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무엇보다 잊으려 잊으려 해도 허탈한 마음 감출 수 없었기에 무력감이 커졌다. 그래서 더욱 움직이려 노력했다.


2월 24일 :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의 위대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의 반작용으로 엄청난 귀차니즘(?)이 몰려와 버렸지만, 어떻게든 이겨보려 했다. 그런데 또 날씨가 맑을 것이라던 기존의 예보와 달리 아침에 구름이 짙게 있다가 개는 중이라니 한참 고민하다가 점심시간이 다가와서야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야간 기차로 아스완으로 떠나야 해서 남은 시간 동안 그동안 가지 않았던 피라미드를 가보기로 한다. 카이로 다운타운에서 지하철로 30분, 마이크로버스로 또 30분을 타고 가면 도착한다. 여기에서도 친절했던 현지인의 낚시 -현지인들이 아랍어를 못하는 외국인을 상대로 진짜 사기꾼들이랑 협상을 해서 사기의 폭을 정한달까- 를 당할 뻔했지만 어쨌든 도착했다. 기자 지구에는 세 개의 큰 피라미드와 거대한 스핑크스가 있다. 처음엔 스핑크스가 우리를 마중한다. 얼굴이 모두 없어진 스핑크스지만 모두들 그 스핑크스와 입맞춤하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등의 재밌는 사진을 찍으려 한다.

IMG_2678.jpg 이 친구와 재밌는 사진을 찍기에는 삼각대는 너무 빈약했고, 나는 너무 SHY 했다

혼자 온 나로서는 스핑크스와 재밌는 사진 찍기는 참 힘들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 피라미드를 모두 볼 수 있다. 사막과 함께 펼쳐진 세 개의 피라미드. 이집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곳. 피라미드를 실제로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늘 했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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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같은 것보단 저 건축물이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지어지는가 하는 생각이 가득해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노동력뿐 아니라 엄청난 기술력이 집약된 것이 아닐까. 아직도 피라미드의 존재 의의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과연 왜 그들은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아무튼 정말 놀라운 건축물이다. 사막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여러 각도에서 한참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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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따라 걸으며 세 개의피라미드를 모두 담을 수 있는 곳을 겨우 찾았다!

야간에는 빛과 소리의 쇼가 있어서 그것을 KFC(!)에서 보는 풍경이 또 아름답다고 하는데, 아스완행 기차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햇빛에 물드는 피라미드를 뒤로 하고 기자 지구를 떠나야 했다.


2월 25일 : 나일강을 따라 아스완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 안의 풍경

카이로에서 저녁 7시에 출발한 기차는 아스완에 9시가 다되어서야 도착한다. 지도를 보면 우리가 타고 온 기차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진 나일강은 따라온다. 그래서 아스완에서 내려서 5분 정도만 앞으로 걸어나가면 나일강을 볼 수 있다. 잠시 강변을 둘러보고 나서 숙소를 정해야 했다. 당장 오늘은 아스완에서 할 수 있는 일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숙소 예약 전에 수많은 삐끼 들을 만나 겨우 내일 움직이는 아부심벨 투어를 예약하고, 몇 번의 숙소 거절 끝에 숙소를 정했다. 가격 대비 이집트 최저 수준의 숙소에서 투덜투덜하며 하루를 쉬었다. 해 질 녘 일몰과 함께 나일강을 따라 움직이는 쪽배, 펠루카를 타고 싶었지만 사람이 모이지 않아 탈 수 없었다. 내일을 위해 편히 쉬기로 했다.


2월 26일 : 아부심벨, 과거를 지키기 위한 현대인의 위대함

버스에서 별찍기는 불가. 동이 트는 아부심벨 가는 길

어젯밤에 몇 명의 삐끼들을 상대하면서 힘들게 예약한, 그리고 아스완 최대/유일의 볼거리라고 불리는, 인도에 타지마할이 있다면 이집트에는 이 것이 있다는 아부심벨 투어가 오늘 새벽 3시(!)에 출발했다. 아부심벨은 이집트 최남단에 있는 곳이기에 아스완에서도 교통수단을 타고 4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지만 나는 잠을 많이 자서인지 똘망똘망 눈이 떠져있었다. 덕분에 별도 똘망똘망 빛나고 있었다. 움직이는 차라 찍을 수 없던 게 아쉬울 뿐. 도착한 아부심벨에는 두 시간 정도 머물 수 있었다. 람세스 2세가 본인의 왕권을 과시하기 위한 대 신전 하나와 여왕 네피르타리를 위해 작은 신전 하나를 세운 아부심벨을 보고 있노라면 람세스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신전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보이는 균열 자국이다.

좌측이 아부심벨 대신전, 좌측은 네피르타리 소신전. 이 모든게 강 아래에서 옮겨져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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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균열이 아니라 이 신전을 옮기기(!) 위해 자른 조각의 흔적이다. 원래 아부심벨은 현재의 위치보다 70m 아래, 지금은 그 자리에 물이 가득 찼다. 아스완댐으로 인해 수위가 오를 것으로 예측됐고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으로 1960년 즈음에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1만 6천 개의 조각으로 쪼개 옮겼다는데, 그 규모를 보면 도대체 어떻게 저걸 잘라서 옮겼나 싶다. 만든 이집트인들의 놀라움보다 이걸 옮김에도 (원래의 모습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옮겨진 그 사실이 더 놀라웠다. 현대인들의 기술 진보 역시 위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부심벨을 떠나자마자 바로 다음 도시를 위한 기차를 타러 갔다. 지갑이 없어지고 쳐졌었는데, 다시 뭔가 바빠진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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