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진짜 이집트는 여기!

2017년 2월 27일~3월 1일, 여행 159~161일 차

by 오상택

카이로는 바쁜 도시였지만 물가가 (비교적) 저렴하다는 장점은 있다. 아스완에 지내면서야 내가 이집트에 와있다는 게 실감이 됐지만 물가도 비싸고 시설도 너무 떨어졌다. 어차피 아부심벨을 보기 위해 왔던 곳이었으니까 아부심벨 투어를 마치고 바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저녁에 도착했기에 남은 26일은 숙소에서 바로 휴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2월 27일 : 범법자의 길을 걷다?

이집트에서 국제 학생증은 강력하다. 모든 문화재에 대한 관람이 50%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 나한테는 애초에 국제 학생증은 없기는 했지만 과외하거나 기타 할인 혜택 등을 위해 남겨 놓았던 국내 학생증으로 할인을 받기는 했었다. 학생이었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이집트에서의 할인을 위해서라도 국제 학생증이 필요했다. 룩소르에는 국제 학생증을 발급해 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학생증을 먼저 만들기로 한다. 여권사본과 사진 2장, 100LE(한화로 약 7,000원) 마지막으로 재학증명서가 필요하다. 룩소르에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인만 X의 도움을 받으면 허술한 재학증명서를 이용해 쉽게 만들 수 있다는데 나는 그를 찾을 수 없어 내가 직접 재학증명서를 만들어야 했다. 졸업한 학교의 졸업증명서를 (고맙다 햅살양) 구해 거기 있는 도장과 양식을 참고해 가짜 재학증명서를 만들었다. 여권사진도 지갑과 함께 분실했기에 기존에 갖고 있던 파일로 다시 뽑았다. 그런데 여권사진이 내 생각보다 좀 큰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이 정도로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준비한 서류를 제출했는데 정말 대강 본다. 여기서 받는 학생증이 진짜 일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정말 대강이다. 이렇게 대강 볼 거였는데 나는 왜 그리 힘들게 재학 증명서를 만들었을까. 어쨌든 서류 제출 5분 만에 국제 학생증을 받았다. 사진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학생증에 들어간 내 얼굴은 귀퉁이가 조각난 채로 남게 되었다. 만들고 생각해 보니 공문서 위조라는 중대 범죄자가 된 것이다. 돈 아껴보겠다고 참 별짓을 다한다 싶었다.


2월 28일 : 고대 문명의 한가운데에 서다

여행이 6개월 가까이 진행되다 보니 여행의 속도감은 많이 사라졌다. 오전에는 휴식을 하고 느지막이 룩소르를 둘러보기로 한다. 룩소르는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뉜다. 오늘은 동안의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풍경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동안에는 룩소르 신전, 룩소르 박물관 그리고 카르낙 신전이 있는데 나는 그중 카르낙 신전만 내부에서 보고 나머지는 들어가 보지 않기로 결정한다. 카르낙 신전은 시내 중심으로부터 도보로 한 시간 정도로 떨어져 있는 유적지이다. 현재 이집트에 남아있는 고대 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신전은 람세스 3세가 신에게 바치면서 만든 신전으로 알려져 있다.

입구에는 (대부분 머리가 박살 났지만) 스핑크스가 사람들을 반기고 큰 석주들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그득한 내부, 오벨리스크와 상형문자가 가득한 벽들이 있는 여러 통로를 만나게 된다. 사실 피라미드를 봤을 때에도, 고고학 박물관에서 미라나 여러 문화재들들 봤을 때도 내가 이집트에 있다는 느낌을 크게 못 받았다. 그런데 카르낙 신전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내가 고대 이집트로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을 받는다. 일렬로 늘어선 스핑크스 주변에 왠지 야자수가 심어져 있었을 것 같은, 흰색 전통의상을 입고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석주가 가득한 중앙 홀에 들어갔을 때에는 고대 이집트가 아닌 문명을 탐험하는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이었다. 상형 문자를 내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 하나하나 판 흔적에 놀라움과 대단함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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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해가 이동하면 카르낙 신전의 색은 점점 붉은빛을 뗘간다. 아쉽게도 해가 지기 전 빛과 소리의 쇼 준비로 나가라고 해서 끝가지 보지는 못했는데, 아마 석양에 물드는 카르낙 신전은 더욱 아름다우리라. 걷기가 힘들어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룩소르 신전으로 이동한다. 룩소르 신전은 아멘호텝 3세가 지은 신전이다. 내부도 아름답다고는 하나 카르낙 신전을 본 나로선 큰 감흥이 없을 것 같아 들어가지는 않았다. 룩소르 신전도 규모가 꽤 크기 때문에 외부에서만 봐도 그 웅장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명 덕분에 더욱 그래 보이기도 하고. 신전 주변을 둘러보면 사진을 남기면서 여러 생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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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문명은 당시 시대를 생각해봤을 때, 그 규모나 정교함이 다른 더 최근의 문화재의 것들보다 더하다. 그들의 과학기술 수준이나 측량술, 미적 수준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3월 1일 : 눈으로만 담기에는


서안에는 볼거리들이 많다. 여러 귀족/평민들의 무덤들이 가득하다고 하는데, 그걸 다 보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주요 포인트들만 둘러보는 '서안 투어'를 이용한다. 나 역시도 그를 이용하기로 한다. 왕가의 무덤을 비롯한 몇 군대의 신전들을 들른다. 사실 이 투어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왕가의 계곡이다. 왕들의 무덤이 밀집된 이곳은 내부 색채감이 강한 도료로 칠한 벽들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카르낙 신전이나 피라미드, 스핑크스 대부분이 암석에 상형 문을 새기거나 모래색의 밋밋한 느낌인데 반해, 왕가의 무덤을 비롯한 서안 투어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의 가장 큰 특징이 채색된 벽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중 보관상태가 가장 우수하고 빛을 받아 은은함이 돋보이는 곳이 왕가의 계곡인데, 문제는 사진 촬영이 안된다. 물론 다른 곳들도 다 안된다지만 여기는 걸렸다가는 70불(!)을 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곳이다.

IMG_3228.jpg 사진촬영이 안되서 찍을 수 있는 것은 이 계곡이 전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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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왕가의 계곡 외의 합세 슈트 신전과 하부 신전은 사진을 담을 수 있지만, 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플래시만 안 쓰면 손상될 일도 없는 건데... 그저 아쉬울 뿐이다. 눈으로만 담기에는 아쉬운 풍경이랄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눈에만 담아와야지. 투어는 속전속결이었다. 한 군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머물지 않았다.


P.S.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룩소르가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였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더욱 이 곳에서 고대 이집트의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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