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1~22일, 여행 153~154일 차, 카이로
여행에서 3일이라는 기간을 일정이 없이 보낸 다는 것은 정말 큰 휴가이다. 큰 휴가 이후의 일정이라 괜히 부담도 됐지만, 오랜만에 시작하는 홀로의 여행인 만큼 인도에서 가졌던 것처럼 내 템포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이집트의 '느낌'을 알아야 했다. 쉬는 3일에 그런 걸 했어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나에게는 정체기 같은 느낌이었으니. 오늘 일정을 하며 천천히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발이었다. 인도에서 처럼 기를 법도 하지만, 보기보다 내가 완전한 여행자가 되기에는 면도나 이발을 안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숙소 근처에 50 EGP(한화 약 3,500원)에 머리를 자르는 곳이 있었다. 더 싼 곳을 찾을까 망설이다가도 그냥 잘라보기로 한다. 파키스탄에 이어서 두 번째 시도였고, 파키스탄에서의 머리가 생각보다 맘에 들어서 내심 기대도 했다. 결과는 암담. 파키스탄과 다르게 앞머리의 처리 기법이 독특한 지라 내 앞머리도 독특해졌다. 머리를 왜 이런 방식으로 자르냐고 물어보았는데 'This is Egyptian style'이라는 대답뿐. 이집트인의 첫인상은 우기기의 제왕인가 보다 싶었다. 자른 머리를 감아 정리한 뒤 본격적인 첫 일정으로서 카이로 시내에 위치한 고고학 박물관을 선택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답게 이집트에는 굉장히 많은 유적이 있다. 애석하게도 침략 시기 약탈과 관리 소홀로 인해 훼손이 많이 되었다.
때문에 한 번에 관리하기 위함인지 몰라도 웬만한 유명 유적들은 대부분 고고학 박물관에 이적하여 관리하는 듯하다. 사진 촬영이 유료라 핸드폰으로 적은 수의 사진만 찍었는데, 박물관 내부를 돌아보면 고대 이집트 역사를 전부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유적을 자랑한다.
책에서나 볼 법한 석상이나 석판에서는 나도 모르게 멈추어 상형문자들을 찬찬히 바라보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적만 모아놓은 곳. 가장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고 도굴이나 훼손 없이 온전히 방의 유적이 지켜졌다는 점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투탕카멘의 유적, 그중에서도 황금마스크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다. 이집트 박물관을 둘러보니 정말로 내가 이집트에 왔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기차표를 끊고 오후에 올드 카이로와 카이로에 있는 최대의 시장-바자르-에 들러서 시내를 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것에 의하면 인터넷으로 예매가 된다는데, 인터넷에는 모두 1등석과 2등석뿐이었다.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기차는 2시간 정도로 짧기에 더 저렴한 3등석을 타고 싶었다. 여행자로서 현지인에 삶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까. 아침에 도착한 기차역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창구를 찾지 못했던 것. 온통 아랍어뿐인 간판에, 카이로 역은 꽤 많은 플랫폼이 있는데 한국처럼 위로 올라가서 모든 플랫폼을 갈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중앙에서 갈라져서 가는 방식이라 경우에 따라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참을 헤매어서 외국인 티켓 창구에 도착했다. 알렉산드리아행 3등석 티켓을 요구했는데 여기는 야간 슬리핑 기차만 팔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란다. 소개해 준 곳은 현지인들이 티켓을 살 수 있는 창구였다. 다시 줄을 서서 알렉산드리아행 3등석 티켓을 요구했는데 끊을 수 없단다. 왜냐 물으니 '외국인은 안된다'라는 대답. 그래서 '이게 법적으로 규정된 거냐'라고 물으니 내 영어가 이상한 건지, 그분의 영어가 짧았는지 소통이 되지 않아 다시 외국인 창구에 가서 확인을 했다. '왜 외국인이 3등석 티켓을 끊을 수 없나? 이것은 규정인가?' 그러자 '그렇지 않다. 외국인도 3등석에 탈 수 있다. 왜 티켓을 안 주지? 기다려라'라고 하더니 새로운 사람이 왔다. 새로운 사람이 상황 설명을 듣더니 낯빛이 좋지 않다. 그러고선 내게 하는 말이 '이유는 없다. 네가 3등석 티켓을 끊을 방법은 없다. 넌 외국인 여행자 아니냐. 당장 지갑에 있는 돈이 나보다 많을 텐데 왜 비싼 티켓을 끊지 않는가? 한국에서 카이로-알렉산드리아 거리를 가려면 얼마가 드느냐? 거기보다 싼 곳 아니냐'라는 말을 들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이게 법적으로 정해진 부분이면 양해를 하고 넘어갈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고... 여행 중에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덕분에 왔다 갔다 한 시간, 직원과 실랑이 한 시간 등 거의 4시간 가까이를 카이로 역에서 낭비했다. 그 뒤에 가고 싶던 올드 카이로는 너무 멀어서 그 일정을 포기해야 했다. 여행을 수정해야 하는 데서 오는 실망감보다는, 이집트에서 여행자가 가지는 위치에 너무 화가 났다.
한 가지 더 화가 났던 일화는 이후 사탕수수 주스를 마시다가 일어났다. 분노에 차서 진정시키고 싶어 (사실은 배고파서였지만) 사탕수수 주스를 한잔 마시려고 했다. 마침 잔돈도 있고 해서 처리하고 싶어서 마시고 돈을 지불하는데 돈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돈이 살짝 찢어져 있는 손상화폐였던 것. 애초에 잔돈으로 이것을 나에게 준 이집션도 어이가 없지만... 외국인 관광객으로서 이런 위폐를 가지게 될 수 있는데 친절한 설명이 아니라 그냥 돈을 던져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게 왜 안 되냐'하고 또 한참을 실랑이를 하는데 옆에 있던 이집션이 '야, 그거 손상돼서 안돼. 나 줘봐'하더니 그 이집션이 자기가 가진 깨끗한 돈으로 바꾸니 그제야 받는 것. 친절한 이집션한테 내 돈을 주려고 하자 '괜찮아 나는 이 돈 다른데서 바꾸거나 쓸 수 있으니 상관없어'라는 것... 그럼 결국 그 사탕수수 주스 팔던 이집션은 나에게만 차별된 것을 요구한 게 아닌가! 그 이후로도 피곤한 일은 수없이 많았고, 덕분에 이집트에서 여행자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일반화를 할 수 없지만 수많은 삐끼와, 언젠가 등장하게 될 일반인들 등 이집트에선 여행자가 그냥 호구요, 지나가는 고양이 만도 못한 느낌이랄까. 이 날 때문인지 나는 주변 친구들이 안부를 물으며 이집트가 어떠냐고 물으면 '두 번은 오고 싶지 않은 나라'라고 대답했다.
물론 이렇게 사진을 허락해 주기도 하고, 과자에 예쁜 데코레이션도 해주는 나이스 한 이집션들 덕분에 이 생각은 다른 일을 겪으면서 서서히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