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5일, 여행 175일 차, 터키 이스탄불
애증의 이집트를 떠나 비행기로 약 4시간, 그리스를 거쳐 아시아와 유럽의 교집합인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예매하기 전 원래 계획인 그리스에 들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쉥겐 조약 부분도 그렇고 그 이쁘다는 그리스를 나 혼자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그리스를 포기하고 바로 터키로 이동했다. 터키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기대가 큰 나라였다. 게다가 카우치서핑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어서 비용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많은 기대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4시간 뒤, 나를 반기는 터키의 모습은 내 기대와는 사뭇 다른 흐린 날씨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한참을 나서지 못했다. 생각외로 밤 비행기가 피곤했다. 점점 야간이동이 피곤해 지고 있다는 것을 몸이 느끼니 여행이 꽤 길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새벽일찍 도착했고 충분히 쉴만한 시간이 있을테니 오후에는 숙소 근처라도 돌아보려고 했는데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쌀쌀한 날씨와 살짝 내리는 비가 날 맞이했다. 터키 첫 날부터 이런 날씨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 보았다. 물론 푹 쉬고 나서 지만. 숙소는 이스탄불의 번화가 중 한 곳인 이스티칼 차데시쪽이었다. 날씨가 안좋아도 번화가에 가면 조금 나을 줄 알았는데 크게 나아지는 바는 없었다. 사람사진 간만에 잘나온 사진을 찍었음에도 내 표정에도 비가 왔다. 비가오니 내 표정에도 비가 오나보지.
누군가는 여행 중에 에피소드(?)가 정말 많이 생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는 무난하게 (혹은 안전하게)여행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한 빅 이벤트가 생겼다. 사실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당시에는 너무 떨리고 무서웠으니까. 비가 오는 거리를 뒤로 한 채 숙소에서 잠시 더 휴식을 취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밤에는 비가 그치고 구름이 살짝 자리잡으면서 운치있는 분위기로 변했다. 이스티칼 차데시 역시 화려한 조명과 거리의 음악으로 아름답게 변했으니까.
숙소 앞 갈라타 타워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한 터키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가족에게 보낼 사진을 찍어 달란다. 뭐, 이런 부탁 거절하지 않을 이유 없다. 국적을 묻길래 한국인이라고 하자 반가워했다. 한국 IKEA 들어올 때 일을 했었다나 어쨌다나. 같이 밥을 먹자고 물었는데, 터키인들이 외국사람들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라는 말을 여행 중에 너무 들어서 기대 반으로 그러자고 했다.
식당에서 맥주와 이런 저런 요리를 먹었는데 20TRY(한화로 약 3만 6천원)이 나왔는데 그 아저씨가 100을 냈다. 너는 형제니까 낼 필요가 없다. '이것이 형제의 나라 클라스인가'라는 생각에 남은 20을 내고 야경을 보기 위해 산책을 더 하였다. 아저씨가 '자신이 아는 야경 포인트가 있는데 거기 한 번 가볼래?' 저녁도 사주셨겠다 거절할 이유 없이 따라 나섰다. 택시비가 25TRY가 나왔지만 아저씨가 또 20을 내주었다. 이 천사같은 형제를 보았나! 야경을 어디서 보면 되느냐길래 저 건물에 올라가면 야경이 잘 보인단다. 따라나선 건물에서는 꼴랑 이층만 올라갔다. 그곳은 펍이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저 멀리 한국인이 한 명 보이는 것 같았다. 사실 현지인들이 더 많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간단하게 한잔 하러 들어온 줄 알았는데 여러 안주가 깔렸다. 나는 나이트 클럽같은 곳에 가본 경험은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직감적으로 안다. '과일 안주는 가장 저렴하고 비싼 (?) 안주다.' 이런 것을 나에게 그냥 줄 리 없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들이 주는 음식과 술을 아무것도 입에 댈 수 없었다. 그러다가 왠 아가씨 두 명이 나와 그 아저씨 옆에 앉았다.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하는데 이건 분명 느낌이 이상했다. 아저씨에게 '나 터키 돌아다닐 계획도 짜야 하고, 피곤하고 해서 좀 가야 겠어'라고 말했는데, '그래, 계산하고 같이 나가자'라고 말해주었다. 종업원이 왔고 종업원이 건넨 계산서를 보고 난 경악했다. 4000 TRY, 우리 돈으로 약 120만원. 둘이 나눠 내더라도 60만원인 것이다! 뭔 호랑말코 같은 상황이... 아저씨는 '내가 일단 내건 낼 수 있고, 네 것도... 내기엔 많잖아. 근데 내 줄 순 있어! 너 지금 얼마 갖고 있니?'라고 말했다. 아저씨의 저 말은 나를 현혹하기 위한걸까, 진짜일까 하는 수 많은 고민 끝에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나가보기 위한 짱구를 굴렸다. '나 이집트에서 지갑이 털려서 돈이 하나도 없어.' 그러자 옆에 있던 덩치 큰 종업원은 '걱정마. 그런 널 위해 카드기계도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도망갈 것 같으니 지갑을 달라는것 아닌가. 그래서 지갑을 주진 않고 그냥 지갑을 모두 털어 내용물을 공개했다. 다행히 나는 돈을 많이 인출하지 않아서 당시 100TRY(한화로 약 3만 원)정도만 갖고 있었고, 지갑엔 총 4장의 카드가 있었다. 이스탄불교통카드와 국제학생증, 항공사 마일리지 카드와 하나의 체크카드. 하나씩 이 카드가 뭔지 물어봤고, 체크카드 차례에서 난 '야 그거 마일리지 카드야! 나 지갑 잃어버려서 지금 카드 없다니까! 달러도 숙소에 있고!(사실 달러는 가방안쪽 깊숙한 곳에 있었다.) 야 이러면 나 경찰에 신고할꺼야. 당장 내 지갑내놔'하고 지갑을 받자마자 가방을 들고 미친듯이 뛰었다. 큰 덩치형들이 나를 붙잡으려는 듯 따라왔지만 내가 더 빨랐다. 가게 문을 나서고 꽤 멀어지고 나서야 안심하던 순간 가게 직원이 'HEY!'하고 부르던 것! 거리를 두고 있었어서 괜찮다곤 해도 섬칫했다가 그 직원이 '돈 가져가. 니 돈'이러길래 조심스레 다가가 돈만 다시 받고 버스 정류장까지 미친듯이 뛰었다. 사기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성행하는 사기 방법중 하나였다. 그들이 그 카드로 결제도 안하고 그냥 보내줘서 망정이었지 잘못하면 생돈 60만원을 날렸던가, 어떤 위해를 당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육두문자를 되뇌이며 호흡을 가다듬으니 옆의 터키인 할아버지가 영어로 이유를 물어왔고, 그걸 풀어 내니 굉장히 놀라면서 '내가 미안하다. 혹시 돈이 필요하면 내가 돈을 좀 줄 수도 있다'라고 해주셨다. 정중히 거절했고 한참을 걸려 숙소에 돌아왔다.
지금이야 아무 일이 없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웃으며 넘기지만 당시엔 정말 다급했고, 긴장됬고, 무서웠다. 여행 중 벌어진 일 중 가장 황당한 일이었으니까. 그보다 걱정이다. 이런 일이 있고나면 사람들을 쉽게 못믿게 된다. 나는 또 어떻게 터키 사람들과의 교감을 시도해야 하고, 어떻게 그들을 경계해야 할까. 여행의 딜레마가 다시 깊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