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비정상회담

2017년 3월 19일, 여행 179일 차, 이스탄불

by 오상택

생각보다 오래 있게 된 이스탄불의 마지막 날이었다. 첫날의 대박 사건과 날씨 안 좋은 며칠 때문에 압축적으로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이스탄불 곳곳을 날씨에 어울리게 본 것 같아 좋았다. 오늘의 야간 버스를 타고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근교에서 좀 떨어진 포인트들을 가보려고 했는데, 숙소에서 한 여행자와 조우를 하면서 오늘의 스케듈이 조금 변경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서지니가 되어보자

숙소에 묵는 게스트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는데 한 명의 동양인이 더 들어왔다. 아쉽게도 한국인은 아니었고 중국인이었다. 캐나다에 사시는 왕 선생님은 원래 패키지 투어로 오시려다 구하질 못해서 티켓만 구매해서 오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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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숙소에서 하는 비싼 투어를 하시려고 하길래 전철을 타고 움직이며 이스탄불 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 드렸다. 그런데 어차피 오늘 마침 근교에 가려던 것은 좀 늦은 시간이었고, 어제 아야 소피아에 갈 때 삼각대를 두고 오기도 해서 들려서 찾으러 가는 겸 왕 선생님의 서지니가 되어드리기로 했다.


왕 선생님과의 기묘한 시간

인도에서 Joanna 이후로는 중국인과 대화하며 오랜 시간 함께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뭐, 왕 선생님과 봤던 것들은 대체로 근 3일 동안 한 번 이상은 봤던 유적지들이었기에 기본 적인 내용은 설명해 드릴 수 있었다. 나에게 이 시간이 재밌었던 이유가 있어 남겨보려 한다. 이 분이 의외로 유적지만큼이나 아기자기한 거리들에 관심이 많으셨다. 내가 돈이 없는 여행자였기에 뭔가 그 수준을 맞춰주기 위해서 그러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스 티칼 차데시의 작은 골목들에서 한참을 바라보시고 한참을 사진을 찍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이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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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와 골목을 다 보고 밥을 먹은 후 갈라타 타워에 올라갔고ㅡ 풍경을 보고 나서 나눈 이야기가 바로 그것. "왜 아프리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문명 수준이 발달되지 못했는가"라는 주제로 거의 두어 시간 이상을 이야기를 했다. 아주머니 말을 전부 옮겨 적을 수 없었지만 "다른 곳에는 역사와 문화가 다 남아있는데 그들은 어떤 이유로 그걸 다 지켜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고 여러 경우의 수와 무례하지 않은 범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가능한 이유들을 이렇게 저렇게 설명해 드렸지만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다.(그대로 적었다가는 텍스트가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것들이 있어서 다 적을 순 없지만.) 여행에 와서 100분 토론의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이야. 터키에 와서 보낸 시간 중 가장 오묘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스탄불의 마지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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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야간이었고, 갈라타 타워를 가기 전부터 타워에서 본 야경까지 마지막까지 이스탄불에서 담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풍경을 담기 위해 애썼다. 이 사진 이후로 나는 바로 버스터미널로 이동했고, 다음 도시인 사프란 볼루로 이동했다. 뭔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왕선생님과 그리고 이스탄불과 작별하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곳이니 못 본 곳은 그때 보기로 하고 이스탄불의 밤 풍경을 뒤로하고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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