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0~21일, 여행 180~181일 차, 사프란 볼루
늦은 밤 이스탄불을 출발한 버스는 한참을 달려 한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사프란 볼루이다. 그런데 아직 날씨는 다 풀리지 않은 덕택에 구름이 짙게 다가왔다.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제발 날씨가 좋아지길 빌었다. 항상 여유로운 여행에는 좋은 날씨가 필수니까!
버스가 날 내려준 곳은 사프란 볼루의 입구 쯤 되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어디서 버스를 탈 수 있는지 당췌 사람이 없어서 물을수도 없었다. 결국 3k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보도록 했다.
구름이 짙은 마을은 아직 그 정체를 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짐을 풀어 놓고 휴식을 취한 다음 느지막히 마을을 보러 갔다. 오래된 마을이 주는 고즈넉함이 포인트인 사프란 볼루. 오스만제국 시절 지었던 집들과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동서양을 오가는 카라반들이 이 곳에서 경유지로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양식들을 잘 갖고 있었고 현대 들어서 카라반이 종말을 맞이 했음에도 그 모습들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바뀌었지만 마을이 주는 세월의 모습은 그대로인 듯 했다.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야경 사진을 찍기는 어려웠다. 돌아가는 길, 밤모습도 고즈넉한 거리였다.
사프란 볼루의 숙박비는 굉장하다. 다른 지역의 두 배는 되는 가격이고 마땅한 식당이 없어 밥은 거의 과자로 때워야 할 정도였다. 그날 바로 버스로 카파도키아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떠나기 전 아침 날씨가 너무 좋았다.
버스 시간도 조금 여유가 있으니 마을 뒷동산에서 마을을 보기로 한다. 어떤 시에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사프란 볼루는 멀리서 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각자의 역사를 가진 붉은 지붕의 집들과 화창한 하늘이 이루는 모습이. 그래서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근처 찻집에 사람들이 왔다. 아이도, 아저씨도 날씨와 마을이 주는 여유를 느끼는 모습에 또 한번 마음이 여유를 찾을 뻔 했지만 서둘러 마을을 떠났다. 작은 마을에서 짧지만 큰 여유를 느끼고 움직일 수 있었다.
점심 시간 즘 카파도키아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앙카라를 거쳐 약 9시간 정도의 버스를 타고 힘들게 도착했는데, 미리 알아둔 숙소에 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근처 숙소에 가봤는데 이번엔 화장실에 샤워 꼭지가 없는 것이다. "왜 샤워 꼭지가 없어?"하니 갑자기 어디선가 가져와서 달아버린다. 방 상태나 관리가 그다지 양호한 것 같지 않아 꾸역꾸역 무료 인터넷으로 평점이 좋은 한 호스텔을 찾아갔다. 방은 동굴에 있는 도미토리였고 습도가 높았지만 훌륭했다. 와이파이가 무엇보다 잘터졌으니 가장 훌륭했다. 방이 얼마냐고 물으니 20TRY (한화로 약 6,000원)이란다. "인터넷에선 19TRY였는데 왜 가격이 다르냐"라고 물으니 다짜고짜 "나에게 나가서 다른 방을 알아보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냥 왜 가격이 다른지 물어봤고 안된다고 하면 되는 것을. 당황해서 "아니 20TRY 낼게. 그냥 난 궁금해서 물은거고 실제로 가격이 다르잖아." 그럼에도 꿈쩍 안하길래 옆을 보니 한 한국인이 있었다. 그 분은 "터키인들의 문화가 작은 돈 가지고 째째하게 구는 것을 안좋아 한다. 고작 1리라 아닌가."라셨다. 한참을 멍하게 있으니 그 주인이 "19에 여기서 자. 미안해."하고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긴 했지만 터키 주인의 안하무인한 태도-설령 그것이 터키의 문화라고 한들, 손님을 쫓아내는 경우가 상식선에선 이해되지 않는다-와 같이 계셨던 한국분의 어시스트 (나중에 얘기를 나눠보니 너무 상황이 웃겨서 약을 올리셨다고.) 가 카파도키아 첫 날의 기분을 뭔가 멜랑꼴리하게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