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동굴에서의 칩거

2017년 3월 22일, 여행 182일 차, 터키 카파도키아

by 오상택

카파도키아의 첫인상이 좋았을 리 없다. 그래서 첫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카파도키아가 트래킹 코스가 많기 때문에 본인이 어느 정도 계획을 짜고 오느냐에 따라 지내는 기간이 많이 다르다고. 2~3일 정도 안에 가는 것으로 갈무리했다.


동굴에서의 칩거

카파도키아하면 대부분이 이상한 형태의 돌(사실은 모래에 가깝다)들, 그리고 그 유명한 열기구 투어를 떠올리지만 막상 여행자로서 카파도키아를 맞이하는 첫인상은 동굴생활(!)이다. 과거 카파도키아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보는 그 커다란 바위(그러니까 모래가 굳어진 사암인 듯하다) 안을 파서 건물로 이용했는데, 그런 방식을 현재에도 유지해서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내가 지냈던 숙소 역시 그러했다. 동굴 숙소의 장점이자 단점은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기가 막히게 빨리 가기도, 기가 막히게 느리게 가기도 한다. 도착한 첫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서 동굴에서 지낸다. 누군가 빨래를 널어서인지 습기가 나가지 않는 눅눅함. 창문이 없어서 채광이 되지 않아 바깥 상황을 알 수 없는 단절감. 그곳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올드보이의 오대수에게도 유튜브가 있었다면 그 감금 생활이 지루하지 않았으리라.


카파도키아 파노라마

나는 내가 완벽히 히피 스타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면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동굴에서의 타임워프(?)가 적당히 지나고 나니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셋/선라이즈 포인트가 있다고 하여 천천히 걸어 선셋/선라이즈 포인트로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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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붉은 터키 국기가 무채색-물론 실제로는 햇빛의 색이 달라질 때마다 여러 색으로 물들고 있지만-의 사암 기둥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처럼 도드라지며 역동감을 주는 듯했다.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 사암들이 있는 곳을 걸어보기로 한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사암 기둥에 가까이 가보면 예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집 입구와 채광을 위한 창문 등 집으로 사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참을 앉아 일몰을 그곳에서 관람했다.


야속해도 멋진 여행자

저녁시간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나를 약 올렸던(!) 여행자 분이 계셨다. 나보다 한 살이 많던 '현진'형님은 나랑 비슷한 기간에 출발한 여행자셨는데 여행 내의 스펙터클은 나보다 더 대단하셨다. 내가 고민했던 러시아 루트를 통해서 동유럽을 들어와서 조지아를 통해 터키로 들어오신 것이었다. 나도 여행 계획 초기에 시베리안 횡단 열차를 탈 것인가 인도를 여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이 분의 더 대단한 점은 현대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 나라의 정치 상황이나 배경 등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셨다. 나를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워만 하려다가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하나 알게 된 것 같아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마침 안탈리아까지는 이동 계획이 같아 함께 이동하기로 이야기를 했다. 가이 하는 동안 어떤 이야기와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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