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비가 내려도

세 단어 잇기(더위, 여행, 시골)

by 박수민

매년 여름이 되면 ‘지난해에도 이렇게 더웠나’하고 되짚어보게 된다. 6월 초인데도 30도가 웃도는 날씨에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면 한여름에는 ‘어떻게 견디나’ 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씨는 해마다 점점 덥고 뜨거워져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이렇게 더울 땐 자연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어릴 때 여름이면 엄마아빠 손을 잡고 해수욕장을 가곤 했다. 엄마아빠 뒤를 따라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는 발을 동동거린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생각보다 차가웠던 바닷물도, 엄마가 입었던 해바라기 무늬의 수영복도. 그때 엄마의 수영복은 바다에서도 눈에 띌 만큼 화려했다. 그 화려한 수영복이 엄마에게 무척 어울렸고, 어린 눈에 엄마가 무척 예뻐 보였다.


한바탕 바다에서 놀고 나면 아빠는 라면을 끓어주었다. 집에서는 엄마가 요리를 했는데, 밖에 나오면 항상 아빠가 밥을 지어주셨다. 야외에서 먹는 밥은 항상 맛있었는데, 언니는 밖에서도 많이 먹지 않았다. 나와 달리 입이 짧은 아이였다.

한바탕 놀고 아빠가 쳐놓은 텐트에서 낮잠을 잘라치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 맹렬히 퍼붓는 비가 때로는 그쳤고, 때로는 그치지 않아 빗속에서 텐트는 접는 아빠를 멀리서 지켜봤다.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을 때는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비가 개곤 했다. 해수욕장에 펼쳐져 있던 텐트는 한동안 평상에 놓아두었다. 텐트가 마르면 차곡차곡 접어 아빠의 파란 가방 속에 들어갔다.


어릴 때 아빠가 파란 가방을 꺼내 들면 여행을 가는 걸 알았다. 매번 갈 때마다 비를 만났지만, 엄마아빠는 그래도 우리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셨다. 어느 날인가는 고모집에 간 적이 있다. 휴가 때마다 비 때문에 고생하는 동생 내외가 안타까워 부른 것인데, 그때도 어김없이 비는 내렸다. 하나 달랐던 건 비가 와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고모집 툇마루에 앉아 옥수수를 먹었다. 고모집은 시골이라 화장실이 밖에 있어 무서웠지만, 근처에 계곡도 있고 무엇보다 며칠이나 숙제에서 해방되었으므로 고모집에 가는 걸 좋아했다.


비를 피해서 간 여행이지만, 계곡에도 가고, 산에도 가고 다른 휴가보다 더 많은 걸 했었다. 그리고 저녁쯤이면 아빠는 자전거에 나와 언니를 차례대로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아빠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여행하면 나는 그 여름날의 고모집이 떠오른다.


#여름날의기억 #아빠의파란가방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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