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이 뜸 들인 느린 온기

by 박수민

겨울이면 밥통에 하얗고 뽀얀 호빵이 밥 위에 쪼르륵 놓여있다. 4가족의 개수만큼 들어찬 호빵은 오늘 저녁 식사 후에 디저트로 나올 모양이다. 호빵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밥솥을 한 번 두 번 열어보면 어김없이 엄마에게 한소리 듣는다. 그런데도 엄마 몰래 밥솥을 열어서는 괜히 한번 호빵을 찔러도 보고 옆 부분을 슬쩍 떼먹기도 했다. 실은 팥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호빵을 빨리 먹으려고 아주 빠른 속도로 밥을 먹곤 했다. 느긋하게 먹어도 내 몫의 호빵은 사라지지 않았을 텐데.


겨울이면 종종 호빵을 산다. 어릴 때는 팥과 야채호빵 정도만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종류가 더 다양해졌다. 색색의 호빵 중에서 나는 고구마 호빵을 가장 선호한다. 팥 호빵도 추억에 젖을 때면 가끔 사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소비기한이 다다라서야 급하게 먹는다. 날이 차가워졌다 했더니 들이쉬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추워졌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호빵이 보인다. 편의점 앞에서 마트 앞에도 호빵을 사갈까 싶지만, 호빵을 들면 손이 시릴 것 같아 다시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발길을 돌린다. 어릴 때는 “엄마 호빵이 먹고 싶어”하면 다음날이면 먹을 수 있었는데, 하는 어린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호빵을 사지 않으면 다음 장을 볼 때 꼭 호빵을 산다. 어릴 때와 다르게 밥솥이 아닌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다. 몇 분이면 뚝딱 만들어지는 호빵. 밥솥 위에서 천천히 데워지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천천히 뜸 들이는 시간만큼 기다림의 설렘이 쌓였다. 호빵을 꺼낼 때의 조심스러운 손길과 겉에 한두 개쯤은 붙어있던 밥알까지 정겹다. 그때 나는 꼭 호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붙은 밥알을 다 떼어먹고 나서 호빵을 먹었다. 밥알 한두 개쯤이야 맛도 나지 않을 텐데 꼭 그렇게 까탈을 피웠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밥알이 안 붙은 호빵을 건네주고는 했다. 겨울이면 밥솥에 놓인 호빵이 생각난다. 호빵을 가르면 모락모락 나던 김까지 그리울 때가 있다.


풍족하지 않았지만, 먹거리 하나로 쉬이 행복해지던 때. 하루 끝에 둘러앉아 오늘 친구와 있었던 이야기를 엄마아빠에게 하며 입안 가득 밀어 넣던 호빵. 그때는 주로 아빠한테 기대거나 엄마 옆에 붙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면 엄마는 꼭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거나 손을 맞잡아주었다. 그 덕분에 바깥에서 매서운 바람을 맞아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엄마 아빠가 준 온기로 추운 날에도 얼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가끔 늦게까지 일하다 돌아갈 때면 유난히 더 춥고 서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편의점에서 돌아가고 있는 호빵을 보면 포근함이 밀려온다. 학교 가기 싫은 게 가장 큰 고민이었던 때가 겹쳐지면서 마음에 훈훈함이 슬쩍 밀려온다. 그렇게 호빵을 하나 사 먹으면 마음까지 든든해져 그날의 힘듦을 잠시 내려놓고 쉬기도 했다.


아직도 날이 차가워지면 옷 단단히 입으라고 전화를 걸어오신다. “호주머니에 손 넣지 말고, 장갑 끼고 다녀”라며 혹시라도 딸이 넘어질까 같은 말을 늘어놓으신다. 이번 겨울에도 엄마 아빠의 사랑 덕분에 나는 얼지 않고 오늘의 서러움을 녹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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