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이었다. 즈음하여 나는 몇 년 전 라디오의 K-POP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다.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평화와 화합을 이끌어 나가는 주체로서의 K-POP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즉 유엔에서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 연설을 하고 2021년 대통령 특사로 세 번째 유엔 무대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특집이기도 했다.
그런데 10년 전에 비틀스를 조명하는 특집을 제작했던 나는 영국의 BBC나 미국의 CNBC 등 해외 언론 매체에서 방탄소년단을 초대하거나 조명하는 자리에 왜 60년이 다 되어 가는 비틀스를 소환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두 그룹이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비틀스와 BTS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10년 전에 내가 제작했던 비틀스 다큐멘터리를 다시 들으면서 비틀스에 대한 중요한 부분들을 재편집하여 인서트를 준비하고 두 그룹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 전문가로 세종대학교 대양 휴머니티 이지영 교수와 한국 비틀스 팬클럽 회장이자 비틀스 박물관 한국 대표 홍보대사인 서강석 회장 등 두 분을 초대했다. 한국의 비틀스 팬 클럽 이야기를 꺼내면 내 주위에 있는 지인들 100%가 한국에도 비틀스 팬클럽이 있냐고 물어본다. 그래 있다. 비틀스 팬클럽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는 비틀스를 오마주한 밴드들도 있으며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그들은 정식으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지영 교수는 세종대학교 대항 휴머니티 컬리지에서 지금 철학을 가르치고 2018년에는 <BTS 예술혁명>이라는 책을 쓰고 방탄과 관련된 현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분이다.
한국 비틀스 팬클럽 서강석 회장은 영국 리버풀 비틀리 스토리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비틀스에 대한 책을 4권을 번역한 그야말로 비틀스 관련 서적은 모두 번역한 번역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분이다.
철학박사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대중음악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이지영 교수는 어떻게 BTS의 아미(ARMY)가 되었을까?
2017년 5월쯤 그녀가 뉴스를 보고 있는데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oard Music Awards)에서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는 기사가 아래 자막으로 흐르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라는 곳은 우리나라 가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 가수들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녀에게 충격이었고 놀라운 소식이었다. 그래서 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어떤 징후 혹은 상징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이런저런 측면들을 살펴보니까 정말로 세상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들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현상이 바로 방탄 현상이라고 생각을 하고 결국 <BTS 혁명>이라는 책까지 내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 리버플 호프대학 대학원 과정에 비틀스를 연구하는 석사과정이 있는 것처럼 BTS를 연구하는 학자는 이지영 교수뿐만 아니라 외국의 학술대회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각 분야별로 BTS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20년 1월에 영국 런던의 킹스턴 대학교에서 제1회 방탄소년단에 대한 ‘BTS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뿐만 아니라 정식 ISSN을 부여받은 학술 저널도 발간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 비틀스 팬클럽 서강석 회장은 또 어떻게 비틀스의 팬이 되었을까?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그램에서 <예스터데이>를 처음 듣고 그때는 비틀스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듣다 보니까 비틀스란 그룹을 찾게 되었고 중학교 2학년 때 그 당시에 비틀스 팬클럽이 있어서 그때 가입해서 활동하다 보니까 평생 비틀기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애정은 그를 비틀스 팬들의 필독서를 거의 다 번역한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4권의 번역서 가운데 비틀스가 저자인 두 권의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해외에서는 비틀스와 BTS를 비교하기도 하고 BTS를 초대하는 자리에 계속해서 비틀스를 소환한다.
1964년 2월 9일 비틀스가 미국의 인기 방송 CBS ‘에드 설리번 쇼’(The Ed Sullivan Show)에 출연했다. 그리고 55년이 흐른 2019년 BTS가 당시 모습을 재현하며 미국 뉴욕 에드 설리번(Ed Sullivan) 극장에서 촬영된 CBS TV쇼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레이트 쇼)에 출연했다. 미국 텔레비전이 이 두 그룹을 비교하고 있다. 영국에서 먼저 비교하기 시작했고, 그다음에 프랑스 언론에서도 ‘BTS가 또 21세기의 비틀스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미국에서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오마주한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다.
왜 그들은 두 그룹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2019년 영국의 BBC의 자매 채널인 CBBC에서 비틀스 최후 공연 50년 특집으로 '팝의 전설'로 추앙받는 비틀스와 '현존하는 최고의 보이밴드'로 불리는 방탄소년단(BTS)을 비교하는 특집 영상을 내보냈다. 비틀스의 역사적인 공연인 '루프톱 콘서트(The Beatles' rooftop concert)' 반세기가 지난 시점을 맞아 과거의 전설과 현재의 챔피언을 동일한 링으로 소환했다.
BBC는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비틀스와 BTS를 비교했다.
우선 미국 빌보드 차트 '넘버 원 싱글' 기록 횟수를 비교했는데 비틀스 19회, BTS 2회였다. 두 번째는 유튜브 조회 수의 비교인데 비틀스는 반세기도 더 전에 활동한 그룹이지만, 여전히 수많은 음악팬들이 그들의 공연 영상을 찾고 있다. 비틀스 12억 뷰, BTS 21억 뷰였다. 마지막으로 단일 앨범 최대 판매고와 그래미상 수상 횟수를 비교했는데 단일 앨범 최대 판매는 비틀스 3200만 장, BTS 250만 장, 그래미상 수상 횟수는 비틀스 9회(후보 지명은 23회), BTS 0회였다.
이지영 교수는 BBC의 이런 수치상으로만 비교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녀가 만약 비교한다면 이런 수치상의 비교보다는 오히려 두 그룹이 정말 ‘대중적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라는 점과 ‘그들을 지지하는 음악 팬들의 규모나 강도가 다른 팬클럽들에 비해 훨씬 더 강렬하고 굉장히 넓었다’는 점,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비틀스도 그 당시에 세계에 필요했던 메시지를 전하는 노래들을 불렀었고 BTS도 지금 현재 21세기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어떤 시대정신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측면을 비교하는 게 좀 더 의미 있는 비교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반세기 전에 비틀스는 어떤 음악으로 그 시대를 대변했을까? 그들의 음악이 그 시대에 기여한 측면은 무엇일까?
2012년 비틀스 데뷔 50주년을 맞아 비틀스 라디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BBC 라디오 수석 PD인 마크 하겐(Mark Hagen)씨는 2013년 우리 취재팀에게 ‘비틀스는 만국 공용어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She Loves you>, <I wanna hold you>, <All you need is love>에서처럼 아주 단순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영혼에게 바치는 음악이자 모든 경계를 넘어선 음악입니다. 또 정치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문학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모든 장벽을 뛰어넘은 것이죠.”라고 이야기하며 그분 스스로 울컥하고 우리도 함께 울컥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또한 비틀스의 함부르크 시절을 연구한 웨인 박사는 1967년 여름에 녹음했던 <All you need is Love>를 예로 들면서 “사랑은 개인과 이데올로기가 만든 허상을 뛰어넘는다. 비틀스는 ‘권력은 우리를 억압하는 것으로 절대로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죠. 오히려 그 반대죠. 서로를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궁극적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틀스 노래를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말했다.
그리고 서강석 회장은 평화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했다. ‘베트남전’이라는 그 당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현했고, 특히 멤버 중에 존 레넌이 비틀스 해산 후에 <Imagine>이란 노래를 발표하면서 평화와 화합의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 주었다고 말했다.
그 시절 비틀스가 사랑과 평화, 그리고 화합을 노래했던 것처럼 BTS도 지금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2017년부터 유니세프와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그리고 ‘엔드 바이올런스(#ENDviolence)’라는 캠페인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런 운동에 대해 이지영 교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것 먹고 예쁜 옷을 입는 그런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의미한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경우 2017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런 메시지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2018년 유엔 연설에서는 ‘Speak Yourself’라는 메시지를 또 전달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이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조금 어려운 표현으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발화하라’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종교 또는 인종 등 여러 가지 정체성으로 인한 싸움과 갈등과 폭력들이 저질러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위험을 무릎 쓰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 ‘Speak Yourself’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Love yourself’라고 하는 메시지들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6~70년대 비틀스가 평화를 노래하고 자유를 노래했던 그런 맥락과 상통한다는 것이다.
비틀스와 방탄소년단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강력한 팬덤’에 있다고 이지영 교수는 진단했다. 실제 영국의 가디언지도 ‘BTS의 팬클럽은 1960년대 비틀스 마니아를 연상시킨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1964년 2월 비틀스가 미국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 케네디 공항에 1만여 명의 소녀 팬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거의 졸도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 당시 비틀스 팬들을 ‘비틀 마니아(Beatlemania)’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마니아’라는 표현은 좀 ‘광적인'의 의미를 내포한다. 근데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ARMY)에 대해서도 워낙에 강력하다 보니까 두 그룹의 팬덤이 굉장히 유사하다고 비교를 하는데 특히 미국 언론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상한 괴성을 지르는 10대 소녀들을 어떤 철부지 같은 반응으로 두 그룹을 엮는다는 것이다. 또한 1964년 비틀스가 미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만 해도 대중들은 그렇게 환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라고 하는 전문가들은 당시에 ‘머리가 더벅머리’니 ‘저게 음악이냐’라고 하면서 굉장히 혹평을 퍼부었었는데 사실 방탄소년단에게도 미국 언론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워낙 미국 시장을 장악하다 보니 견제가 눈에 보이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종종 있어서 팬들도 같이 견제를 하고 있다고 한다.
비틀스가 초기에 음악이나 예술성에 대해서 혹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대중음악의 레전드이다. 그러한 레전드 조차도 처음 등장할 때는 말도 안 되는 혹평을 받았다는 사실은 혹평을 했던 사람들이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비틀스처럼 방탄소년단도 몇십 년 후에 그렇게 다시금 재평가를 받으며 대중음악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쓴 그런 아티스트로, 레전드로 기록되기를 바라본다.
앞으로 50년 후에 우리가 ‘100년 전에는 비틀스가 있었고요, 50년 전에는 BTS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가 있습니다.’ 뭐 이런 말이 나올 수 있기를 말이다.
♪ 추천곡
- 방탄소년단 <Permission to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