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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화 Jul 17. 2022

리버풀을 떠나며

  리버풀에서 3박 4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런던으로 다시 돌아간다. 리버풀에서 런던까지는 우리나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와 비슷한 340km 두 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리버풀 크루역에서 런던 유스턴(London Euston) 역까지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영국의 대표열차 버진 트레인(Virgin Train)이 우리를 런던 뉴스턴역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마치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처럼 즐겁게 아무 말이나 쏟아내 보기로 했다.    

  

  J씨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틀스보다 영국 사람들은 비틀스를 훨씬 더 대단한 밴드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았어요. 그리고 우리들끼리도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에 가서 비틀스 노래를 듣는다면 이전에 들었던 느낌과는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또한 비틀스가 옆집 형들처럼 너무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비틀스 스토리 존 레논의 하얀 방에서는 가슴을 찡하게 하는 뭔가를 느꼈다고 했다. 존 레넌 하얀 방에서의 감동은 H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비틀스 스토리 존 레논 방에서 <Imagine>이 흘러나올 때 감동을 받았어요. 가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뭔가가 있잖아요. 사람 마음을 끌어낸다는 게 힘든 건데 그런 측면에서 비틀스는 정말 대단한 밴드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H씨는 비틀스가 세계적인 밴드를 태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도 알았다고 했다. 나는 비틀스를 알기 위해서 영국에 왔는데 오히려 영국 사람들보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비틀스 음악이 주는 힘임을 느꼈다. 북유럽을 비롯해서 아메리카 대륙, 오세아니아 주에서 온 남녀노소, 세대를 막론하고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영국에 오기 전에는 상상해 보지 못한 광경들이었다.

   H씨는 또한 비틀스가 조그마한 클럽에서 성장해서 유명한 한 밴드가 되었다는 것에도 감동했다. 

  “캐번 클럽 자체가 그렇게 큰 클럽은 아니잖아요. 건물 자체도 번쩍번쩍한 클럽도 아니고 지하에 있는 동네 클럽 같은 곳인데 그런 곳에서 밴드가 자라 성장했다는 자체가 너무나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L씨는 리버풀이 런던에 비하면 시골인데 이런 시골에서 태어난 네 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세계적인 밴드로 탄생한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J씨가 이에 말을 보탰다.

  “옛날에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시대적인 상황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옛날 60년대 70년대에는 대한민국에서도 ‘개천에서 용난다’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지방에서 정말 어렵게 살던 분들이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을 패스해서 검사, 변호사 되고 하는데, 솔직히 지금은 그렇지도 않잖아요. 아마 비틀스도 그때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뭔가를 추구하고 노력했으니까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비틀스는 창의성이 있었고 또 노력을 했기 때문에 시대와 맞아 떨어져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어제 웨인박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절실하게 느꼈다. 비틀스가 62년도에 데뷔하고, 곧이어 64년에 미국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그 당시 미국 시대상황을 보면 미국인들의 우상이었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고 사람들은 공허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아주 멋진 이 악동 같은 섹스 심벌의 네 사람이 딱 나타나니까 소녀들이 광적으로 열광했다. 노력을 통해 실력을 갖추고 때를 만나게 되면 그게 폭발적으로 진화, 발전하는 것 같다. 나는 학생들과 비틀스 함부르크 시대를 연구했던 웨인박사를 만나러 같이 가고 싶었던 것도 비틀스가 스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탈북청년들도 한국으로 오기까지 사선을 넘었고 또한 대한민국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도 있을 텐데, 어려운 과정도 다 이겨내면서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노력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바람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 리버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L씨는 “인터뷰 하러 다니면서 특히 웨인박사님처럼  다과를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게 참 인간미가 넘쳤어요. 그래서 저도 한국에 돌아가면 과외 선생님이나 집에 손님이 오면 차도 준비하고 반갑게 맞아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리버풀에서의 우리들에 대한 환영은 기대 이상이었다. 비틀스 스토리 관장님과 인터뷰를 마쳤는데 관장님이 학생들을 주려고 비틀스 캐릭터가 새겨진 곰 인형을 세 개 준비해서 나눠 주었다. 나도 왠지 그때는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비틀스가 나를 어린이로 만들었던 것 같은데 왜냐하면 나도 어린이처럼 졸라(앙탈아인 앙탈을 부려) 조지 해리슨의 곰 인형을 득템을 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캐번클럽 사장님 역시 인터뷰를 마치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비틀스 굿즈(Goods)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을 다 고르라는 후한 인심을 선물했다.  나 역시 그때 선물 받은 비틀스가 새겨진 하얀 티셔츠를 지금 입을 수는 없지만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다. 

  

   J씨는 존 레넌의 여동생인 줄리아 베어드와의 만남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제일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때 준이가 오빠가 피살당했을 때 어땠냐고 물어봐서 순간 당황했어요. 저도 그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라왔는데 못 물어봤는데 그때 베어드 여사가 솔직히 말했으면 울컥했을 것 같은데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오다가 엄마 돌아가시고 믿고 따르면서 부모를 대신해서 해주던 그랬었는데 미국 간 다음에 생을 마감했으니까.”

  

  나름대로 궁금한 걸 많이 여쭤봐서 소득이 많았던 H씨,

   “그냥 리버풀 전체가 인상 깊었던 거 같아요. 어딜 가나 비틀스 자취가  숨어있고, 비틀스 스토리, 존 레논 공항, 호텔, 비틀스 생가, 어딜 가나 비틀즈의 자취가 다 숨어있는 그런 곳이었잖아요. 그래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케번클럽이었어요. 정말 많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다 함께 비틀스 헌정밴드의 노래에 같이 즐기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비틀스가 거의 반세기 이전 그룹인데 아직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함께 술 마시고 즐긴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케번클럽 현장에서 나도 확인했다. 미국에서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가 내가 그 아들한테 비틀스의 무슨 노래 좋아하냐고 물어보니까 아들이 <Something>이라고 답하자 아버지가 그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거 좋아해?’ 하는 표정, ‘아, 내 아들이 이런 노래를 좋아하고 있었네!’ 하며 서로를 알게 되는 현장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현지 성코디디네이터는 부자간에 이런 여행을 하는 것이 굉장히 부럽다고 했다. 그가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고 자식을 둔 것은 아니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그런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읽혀졌다. 비틀스의 흔적을 찾아 부자가 여행도 할 수 있다는 게 비틀스가 주는 힘임을 느낀다. 

  

  캐번클럽 지하에서 쇼 프로그램 연출하러 호주에서 온 티비 프로그램 프로듀서와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프로그램의 총 책임자는 호주사람이고 감독이 중국 사람이고 배우는 베트남 출신이었어요. 베트남 난민출신이 호주에서 유명한 코메디언이 되었다는 점도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쇼 프로로그램은 비틀스가 공연을 해야 하는데 드러머인 링고 스타가 공연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니가 해라!’ 하는데 그 코메디언이 올라와서 공연을 망치는 그런 설정이었다. 그는 우리가 취재하는 프로그램이 북한에도 방송된다는 사실에 ‘정말이냐?’면서 놀라워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바로 스마트 폰으로 틀어주며 조용조용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며 그가 비틀스 찐 팬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따라 부른 곡은 미국 NASA가 우주에 쏘아 보낸 곡인 <Across the Universe>였다. 비틀스 노래를 북한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리버풀에서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반도를 그려보았다. 이국땅에서 그들은 한반도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H씨, 

  “아무래도 유럽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분단된 국가이고 유럽에서는 다 국경을 넘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데 한반도 남과 북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는 다는 것이 제일 아쉬운 점입니다.”

  J씨, 

  “빨리 통일이 되서 기차를 타고 중국이랑 러시아를 걸쳐서 유럽까지 여행을 갔으면 참 좋아요.” 

  우리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 평양을 거쳐 중국 베이징, 러시아 상테크부르크를 통해 유럽으로 여행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런던으로 올라왔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이동에 제약도 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두 나라가 전쟁 중이니 북한뿐만 아니라 그곳도 통과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존 레넌이 ‘전쟁 없는 세상, 평화를 기원’하며 50여 년 전에 <Image>을 노래했건만 세상은 아직도 전쟁 중이니 더욱더 그가 그리운 날이다. 

비틀스스토리 관장님이 주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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