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는 비말 감염으로 전파되는 까닭에, 전 국민은 한 동안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착용 의무화가 전면 시행된 초기에 '마스크 트러블'이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탄생했다. 마스크가 피부에 닿거나, 가려지는 부위의 불편감과 트러블을 호소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원단의 문제인지 습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화장품 업계에서 할 일은 명확했다. '진정, 회복, 재생'의 키워드를 가진 제품을 판매하는 것.
2. 진정·회복·재생 크림
최근 출시, 또는 리뉴얼된 크림 제품의 카피에서 진정이라는 단어를 쉽게 볼 수 있다.(이미지 출처: 구글)
보통 여드름, 홍조 등과 같은 피부 트러블은 각질층의 손상, 수분 손실, 열감 등이 동반된다. 마스크 트러블도 대체로 같은 증상을 나타냈기 때문에 기존의 '수딩(soothing) 크림' 또는 '장벽 크림'을 찾는 수요가 더 늘어났다. 현대 사회에서는 아토피 피부염, 각종 알레르기 등 민감성(sensitive) 피부 타입이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는데, 그럼 팬데믹에 의한 민감성 피부 타입은 얼마나 증가했을까?
17년도 건국대병원에서 발표한 논문 자료. 한국은 피부가 민감성이라고 답한 비율이 비교적 높다. (출처: 네이버 기사 검색)
설문 조사에서 '당신은 피부가 민감한 편입니까?'라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를 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최소한 '그렇지 않은 편이다.'에 체크하지 않을까? 17년도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약 57%가 자신이 민감성 피부라고 답했다. 그리고 모 피부과 병원이 실시한 16년도부터 20년도까지의 조사 결과, 10명 중 8명 이상이 민감성 피부였다. 특히 2020년에는 여드름, 홍조 등이 있어서 민감성이라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이로써 설문 조사의 단점인 일반화, 단순화를 감안하더라도마스크로 인해 민감한 피부 상태인 사람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최근에는 제품도 이왕이면 저자극, 원료 무첨가, 임상 테스트를 통과한 '민감성 사용 적합' 제품으로 출시한다. 피부 트러블은 화장품이 단독 원인인 경우보다 생활 패턴, 피부 상태나 외부 환경과 맞물려 함께 발생하므로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다. 아무튼 마스크 트러블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정착한 그 속도만큼이나,최근 사람들은 피부 건강에 대한 민감도가 급증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 같은 심리 상태는 진정, 재생 크림 등의 수요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진정, 회복, 재생은 기능성 화장품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효과를 입증하는 공식적인 실험법이나 수치는 없다. 판매자는 효과를 입증할 간접적 임상 데이터를 반드시 구비해야 하며, 만약 제품에 '기능성'이라고 쓰여 있거나 상세 페이지에 광고, 표시하면 위법이다. 피부 '장벽' 강화는 임상적으로 수분 손실량 감소 등의 데이터가 있어야 소구할 수 있다.
그리고 제품의 '재생' 효과가 원료적 특성에 한할 경우, 판매자는 이를 반드시 명시할 의무가 있다.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사항이며, 해당 원료가 사용됐다고 제품에서도 똑같은 효과가 발휘되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이 작성한 제품 리뷰는 제재 대상이 아니므로, 구매 시에는 제품 정보를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1ppm 농도의 EGF가 99% 함유된 제품의 전성분. 총 중량 40ml므로 약 0.00004g 미만의 EGF가 들어있다.(일부 성분 가림, 출처: 구글 검색)
그러면, 원료적 특성에 한한 것이란 문구가 있고, 알면서도 왜 살까? 기대감 때문에. 아예 없는 것보다는 단 1ppm이라도 들어있는 게 뭐라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으니까. 물론, 전혀 없는 것과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엄연히 천양지차다. 다만 그 원료가 목적한 효과를 발휘할 만큼 충분한 양인지, 해당 제품에 섞였을 때의 효과는 나타나는지는 별개다.
여드름이나 만성 홍조 등 치료의 영역을 제외하고, 일상적인 피부 고민은 적절한 보습제(스킨, 로션, 크림 등)와 세안(클렌저류, 각질 패드 등)으로 관리할 수 있다. 혼자서 내게 맞는 제품을 찾기 어렵다면, 같은 연령대와 피부 타입을 가진 이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참고해볼 수 있다. 또는 피부관리실에서 무난한 일회성 스킨케어(피부 상태 진단 포함)를 받은 뒤 일상 관리법을 물어봐도 좋다.
화장품은 감성 상품이면서도 기능 상품이다. 그러나 감성은 주관적이고 기능은 객관적인 만큼, 기대는 덜어내고 효과에는 덜 민감해져도 좋다. 큰 기대 내려놓고 쓰더라도, 효과는 변함없이 동일할 테니까. 오히려 있는 듯 없는 듯, 무던한 게 제일 오래간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