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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Apr 10. 2023

선크림 안 발라도 잘 살고 있는데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맨 얼굴로는 안됩니다.

1.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모두 남자였다.

2. 피부 타입은 건성/중성/지성으로 다양했다.

3. 나이는 30대에서 40대

4. 피부색은 초록빛이 살짝 감돌고 밝지 않은 편

5. 점은 별로 없었다. (기미, 주근깨도 포함)

6. 얼굴에 아무것도 안 바른다는 사람도 있었다.


광노화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분명한데 그들은 선택받은 개체인지 잔주름도 없고 기미나 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선크림은 여름뿐만 아니라 365일 내내 써야 된다고 선전한들, 지금 제 얼굴이 반박 증거 아닙니까? 하하하."


나는 그들에게

'그래도 선크림 바르셔야 합니다.' 라고   없었다. 


"저를 전적으로 믿고 선크림을 들이셔야 합니다."... 글쎄, 모두가 꼭 그래야만 할까? (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기사)




선크림 무용

(無用說, 쓸모가 없다는 견해 또는 주장)


화장품 내용물에 대해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제품뿐만 아니라 피부에 대한 질문도 자주 받는다. 받았던 질문 중에 뾰족한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던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전 선크림 안 바르고 다니는데 별 문제없던데요, 꼭 발라야 돼요?'였다. 게다가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앉은자리에서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정말 할 말 없게도 피부가 별로 까맣지도 않았다.




자외선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

(feat. 남는 건 화상과 주름이란 상처뿐)


햇빛의 자외선은 파장 길이에 따라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도 광노화, 피부암을 발생시키는 자외선이 UVA다. UVA는 피부 표피를 투과하고 다음 피부층인 진피까지 침투한다.


  에너지가 피부에서는 DNA 자극하고 그로 인해 콜라겐이 분해되는데, 이게 피부 세포들에게는 외부에서 오는 시련, 고난과도 같다. 우리가 심리적 압박을 받으면 스트레스 처럼, 세포도 자외선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UVA는 UVB보다 파장 길이가 더 길고 더 깊은 피부층까지 투과한다.(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이 스트레스를 조금 생물학적으로 표현하면, 산화적 스트레스(oxidative stress)라고 한다. 여기서의 산화는 사과나 양파의 갈변을 산화되었다고 할 때와 같은 뜻이다.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철학자 니체가 남긴 말이다.  말은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한 모습을 상상케 하여 인내심과 희망을 북돋는다. 그러나 정신력에게는  말이 통할지언정, 피부 세포에게는 스트레스의 부산물을 축적하게만  이다.


만화 드래곤볼의 초사이어인은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죽지 않고 회복하면 전투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다.(출처: 구글 검색)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아니던가. 더구나 세포가 자외선을 감당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대체 뭐란 말인가. 자외선으로 발생한 스트레스는 염증을 일으키고 심각한 경우 피부 세포암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요인이다.  




강한 자의 피부색


표피와 진피의 경계에 위치한 멜라노사이트라는 세포가 있다.

멜라노사이트는 자외선을 받으면 멜라닌 색소를 생성한다. 이 색소는 어두운 갈색을 띠는데, 흰색은 빛을 반사하고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는 원리에 따라 멜라닌은 빛을 흡수한다. 그렇게 피부를 투과한 자외선을 흡수해서 진피나 주변 세포에 미치는 스트레스를 차단한다.


농담이지만 니체의 말마따나 진정으로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 스트레스가 나를 강하게 한다고 치자. 그렇게 치면 자외선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일수록 멜라닌 색소의 양도 많고, 생성 주기도 짧아서 피부가 까무잡잡해진다. 어쩌면 건강미의 상징은 구릿빛 피부이고, 병약한 사람이나 두뇌 담당 캐릭터인 천재 프로그래머가 창백한 얼굴로 묘사되는 것과도 맥락이 비슷해 보인다.


병 때문에 칩거 중인 캐릭터(좌)와 야외 신체 활동엔 흥미가 없는 천재 해커(우)는 피부가 하얗다.(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상남자 울버린도 권유합니다


하지만 자외선은 분명 피할 수 '있는' 대상이고, 피한다고 해서 비겁해지지도 않는다. 다만 내 피부 건강, 내가 알아서 지킬 거라는데 어떻게 이를 잘못되었다고 말하겠는가. 선크림 안 바르면 얼굴이 탄다는 건 그들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안 바르는 건 화상이든 얼굴 검어지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중 일부는 바르는 게 귀찮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일광 화상에 강한 피부를 타고나서 별 다른 문제가 없었나. 아니, 어쩌면 각질과 붉은 반흔, 따가움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었겠지.


어디까지나 신체의 자유는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를 쓰는 것도 본인의 결정에 맡길 일이다. 워낙에 야외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적어서 피부가 타본 적이 거의 없었다면 선크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태양광의 공격으로부터 전혀 피부가 타지 않을 수는 없다.


좌측부터 세 번째까지는 되직함, 백탁 정도의 차이만 있는 일반적인 선크림에 가깝고, 4번은 고체인 선스틱, 5번은 파우더 타입이다.(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선크림뿐만 아니라, 자외선 차단제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선스틱, 선로션, 심지어 선 파우더도 있다. 그리고 선크림의 사용감이나 백탁 정도도 십 년 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아이크림이나 한방 제품에 비하면 가격 또한 아주 저렴한 생활용품 수준이다. 그런데도 안 쓰는 건 순전히 귀찮거나,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영화 엑스맨의 캐릭터로 유명한 휴 잭맨은 강한 육체미 캐릭터의 현신과도 같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편중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액션 배우로서의 경험이 훨씬 더 많다. 그런 '강한 남자'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쯤 되면 선크림 바른다고 유약한 녀석 운운하는 사람은 농담이겠지.

휴 잭맨은 콧등에 피부암 판정을 받아 치료받은 후 본인 인스타 계정으로 평소에 선크림을 챙겨 바르라고 말했다.(출처: 인스타그램)



전 아무것도 안 발라요


한편, 선크림의 필요성에 대해 한창 얘기할라치면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전 아무것도 안 발라요'라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경우도 조금 난감하다. 아마도 남성이 피지 분비량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많아서 보습제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 또한 세안한 직후는 조금 당길지라도, 1시간 이내로 피부가 편안해지는 지성 피부라서 그들을 이해한다. 게다가 피부가 촉촉해본 적이 별로 없으니 보습제를 발라서 촉촉해진 피부를 답답하게 느낄 때도 있었다.


자외선의 영향을 25년 간에 걸쳐 증명하신 트럭 기사의 사진. 오른쪽 얼굴의 주름이 확연하다.(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럼에도 앞으로 햇빛 보고 살 날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많이 남았고, 함께 할 우리의 신체는 지금보다 더 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괜찮았다고 앞으로도 계속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변명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그만두라고 감히 조언한다.


바즈 루어만의 Wear the sunscreen이란 노래가 생각이 난다. 칼럼니스트 슈미츠가 1997년도에 했던 가상 연설인데 이를 바즈 루어만이 일렉트로닉하게 믹싱했다. 노래 가사는 '선크림을 바르세요'로 시작해서, 이 에는 이견이 없다는 긴 호흡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삶, 인생 조언 등으로 이루어진 가사들은 고루한 할아버지의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무튼 리드미컬하고 독특한 노래다. 마치는 가사는 다음과 같이 수미상관을 이룬다.


"But trust on me, wear the sunscreen."


제 말 믿고, 선크림 바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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