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의 그때 4
아이를 낳을 날짜가 정해졌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어색하고, 모든 것이 무서웠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유도분만을 시작했다.
의사가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 경고를 했지만 막상 진통이 시작되자 온몸이 비틀렸다.
자연분만을 하려면 더 견뎌야 한다는데 내 몸은 아이가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아기는 뱃속에서 나오려 나름의 노력을 하다 태변을 봤다.
태변이란 소리에 이때다 싶어 얼른 제왕절개를 외쳤다.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다.
하지만 마취가 깨면서부터 나는 기분이 나빴다.
다리는 얼음으로 덮은 것처럼 차가웠고, 배는 아프고, 지금의 이 상태가 모두 싫고 거북스러웠다.
병실에서 시부모님의 고생했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엄마는 없었다.
이해를 하려 하면 못 할 것도 없다.
내 친정은 우리 집에서 쉬지 않고 달려도 4시간 거리니까...
당시에 그녀는 초등학생 쌍둥이를 케어하며 일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딸이 첫 아이를 낳았는데...
나는 마취에서 깨는 순간부터 산후우울이 좀 심한 편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혼란이 너무나 무서웠다.
-당시의 나는 수술 다음날 의사에게 퇴원시켜 달라고 했었다. 통원으로 수술부위 치료받겠다고...-
집에 와서도 나의 혼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생각나는 것은 '엄마 밥'이었다.
그냥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특별히 어떤 음식이 생각나서도 아니고 말 그대로 '엄마가 해 주는 밥'!
둘째를 낳았을 때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엄마 밥'이 너무 그리웠다.
앞집 새댁이 아이를 낳고 친정 부모님이 매일같이 딸을 보러 오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서글펐다.
어째서 내 엄마는...
당시에도 나는 '아이를 낳고도 엄마가 해 주는 밥 한 끼 못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에 대한 원망이 더욱 단단하게 굳어졌다.
아이를 낳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껴서.
당시의 나는 엄마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정말 너무너무 싫었고 그 모든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단순한 원망이 아니었다.
당시의 내게 엄마는 그저 증오의 대상이었다.
-산후우울로 모든 감정들이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분노 또한...-
이런 나의 걸러짐 없는 모든 감정을 엄마는 그냥 묵묵히 받아들였다.
노골적일 만큼 직접적인 모든 감정들을 엄마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사과도 변명도 없이 그저 묵묵히...
그저 밥 한 끼가 너무 그리웠던 나.
모든 원망의 눈빛과 말들을 그저 듣고만 있던 그녀.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시의 나는 그녀가 나의 말들로 상처받고 아파하길 바랐던 것 같다.
내가 그리워하고 원망하고 상처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더욱 아파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상처를, 원망을, 그리움을 알아주길 원했던 것 같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런 마음으로 상처를 줬다고 설명할 날이 올까...
그때의 나를 그녀에게 설명하는 날이 올까...
아니, 그때의 그녀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