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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당신과 상대방의 모습

by 문비






내가 상대에 너무 집중하면 나의 상태가 어떤지 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싸움을 일으킬 확률을 높인다.




< 하루의 94%를 차지하는 관점 >


불안함을 드러내는 '내가' 보는 세상




불안이 엄습해오는 순간들이 빈번히 발생할 때면
사람들은 먼저 이 불안의 원인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부분 사람에게서 온다.
사람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1초 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정확하게 모른다.
1초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1초 후


바람이 창문으로 많이 들어와서 시원함을 느낄지


아니면 바람이 덜 불어서 더위를 탈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일상은 어떠할 것이며
그 타인의 감정, 속마음은 어떠할 것인지
더 예측할 수 없다.
그 사람이 "나는 지금 행복해."라고 말을 해도
그 사람이 정말로 행복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은 누구나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고 자라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알고 있고 있을 것이다.

불안 = 사람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날봐 걱정하는 것도 불안이다.
이렇게 작은 1%의 불안은 누구나 안고 산다.


그리고 만약 일찍 못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후 내가 겪는 정신없는 하루는

학점, 상사, 그리고 성공에 대한 욕구가 있기에 존재한다.

그 욕구의 근본으로 들어가도 결국 사람이 있다.

이렇게 불안은 사람이랑 떼려야 뗄 수 없는 심리다.

피할 수 없다.
(세상에서 나 혼자만 고독히 무인도에서
살아가지 않는 이상...)

그런데 이 불안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정작
불안을 제공하고 느끼는 '사람'들 중 일부는
불안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어서일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현상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많다.

나는 너 때문에 상처받았어.
나는 너 때문에 지금 일에 집중이 안돼.
나는 네가 한 그 말 때문에 조금 속상해.
나는 네가 내일 사라질까 봐 걱정돼.

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한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는 게 안전빵이라는 논리 없는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이런 행동은 결국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왜 그럴까 추측해보면.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이 나약해 보여서.
그래서 자신이 상대보다 약한 존재로 느껴질까 봐.
그래서 앞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가능성에 결함이 생길까 봐.'

이런 마음일 것이다.

출처 : jiwoonpak.com

그렇다면
불안함을 드러내면 나약한 것인가..?



불안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솔직함/용기/자신의 상태를 들여다볼 줄 암.
이 3가지를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정작 불안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은
눈치를 보느니 자신을 드러내서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야 행복해지는 것이 본인임을 안다.
드러내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면 물론
이 불안함을 평생 말하지 않고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불안함을 드러내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고 숨기는 것으로
더 중요한 것을 돌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살피고
내가 행복을 느끼고 편안해야
주변 사람들도 편하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를 볼 때 불안함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대신 이를 어떻게 드러내느냐로 이후의 일상은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불안함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사람들을 다시 보면,
나의 감정을 돌보아야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의 문제와 해결은 자신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불안의 책임이 어디에 있든
내가 불안한 것은 사실임을 인정해야
현재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온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것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자신감일 것이다.


(알다시피 자존감과 자신감은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은
불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당연한 현상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자신의 불안을 들어주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이 말을 했을 때 자신을 낮춰볼 사람이든
아니면 더 자신을 잘 알게 되어 좋다고 생각할 사람이든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 인생은 상대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달려있고
그것을 잘 가꿀 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 하루의 6%를 차지하는 관점 >



불안함을 드러내는 '상대방이' 보는 세상




그런데 불안과 관련해서
한 사람의 인생은 작은 부분에서
가장 크게 변할 수 있다는 반전이 있다.



"나 지금 힘들어."

라고 말했을 때 아무리 자신감이 있던 사람도
상대가 이 감정을 작게 생각하거나 심하면 무시하는.
즉 낮춰보는 행동을 할 경우.
이는 서로의 신뢰를 깨는 것이다.

"왜? 뭐가 힘든데?
힘들 이유가 없는데 네가 예민한 거야"

상대의 마음 상태를 부정하는 이 말은
" 너의 마음을 살펴보고 싶지 않다."
라는 말과도 같다.

"지금 네가 불안한 것보다
그로 인해 불편해진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 "

라는 조금 더 이기적인 입장이 나왔기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면 이런 경우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좋은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에서라도 변화가 필요한 상태임을 경고한다.

당연히 변화가 필요한 사람은
불안한 사람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반대의 경우는 말하는 사람도 편해지는 방법이다.

상대에게

"왜 힘들어?"
"그랬구나."
"다음에는 그러지 않도록 이렇게 할게."

이 3단 계면 충분하다.



이 3단계를 거치는 사고 과정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과 미래를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사람은 혼자일 때 더 행복할 사람이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상대의 마음을 볼 줄 모르고 상대와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함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불안은 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사람으로 인해 생긴 불안은
매우 쉽게 없앨 수도 있다.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생긴 상처는
사람을 통해서 치유된다.

라는 말은 이렇게 나왔나 보다.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것은
무시와 방치이다.

이후의 일은 어떨지 안 봐도 안다.

사람 관계에서도 그렇고
사회 속에서도 그렇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상대에게 불안을 준 요소가 있다면
더 각별히 살피고 미리 조심하는 사람이 되자.

난 그렇게 함으로써 나 또한
발전되고 성숙한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세상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배려하는 과정을 통해
나 또한 즐거울 수 있고
편안해질 수 있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가족에겐 언제나 믿음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자.
친구에겐 뒤에서도 좋은 얘길 전할 수 있는 듬직한 사람이 되자.
소중한 연인에겐 처음 만난 날의 약속들을 꾸준히 보여주는 사랑이 되자.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날 웃게 해 주는 사람은
불안이 아닌 믿음을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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