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발등뼈가 부러진 지 2주가 지났다. 깁스한 다리 상태를 확인하러 병원에 갔다. '좋아지고 있습니다'라는 희망 섞인 말을 듣고 싶던 내게 의사 선생님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냉혹하게 내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앞으로 깁스는 4주를 더 해야 한다는 것, 4주 동안은 뼈가 잘 붙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고 그 기간 동안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6주 동안 왼쪽 다리를 사용 안 했기 때문에 곧바로 이전처럼 걸을 수는 없고 본격적인 재활 치료는 깁스를 풀고 나서 시작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흔드는 한마디.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있습니다. 꾸준한 재활치료를 통해서 무너진 왼쪽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몸 관리 '참 잘했어요' 같은 칭찬을 듣고 싶었는데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잔인했고, 정확했다. 병원을 나오는데 조금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충분히 힘든데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니. 양 손바닥은 하루 종일 목발을 짚고 다니느라 멍이 들어 욱신거리고, 짝 잃은 오른쪽 발은 외로이 한 발로 벌을 서고 있고, 몸의 중심을 잡고 있는 척추도 무너진 균형을 눈치챘는지 며칠 전부터 뻐근해지기 시작했는데...
병원을 나오며 허무한 마음을 달래고 의사선생님의 말씀과 내 상황을 곱씹어 봤다. 생각이 조금씩 정리됐다.
그렇다. 내 몸은 균형이 무너져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너진 균형을 되찾아 가는 중이고.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다. 현 단계는 무너진 균형을 잡기 위한 준비작업 단계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전 재료를 다듬어서 재어놓은 상태. 양념갈비를 만들 때 고기를 양념으로 재어놓는 시간이 있다. 양념들이 고기 속으로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생각해보라. 생고기와 양념을 분리한 채로 생고기를 양념에 찍어서 구워 먹는 양념갈비를. 아무리 고기를 잘 굽는 사람도 그 갈비를 맛있게 굽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지금 왼쪽 발의 근력을 회복하는 재활치료를 받기 전에 그 재활 치료가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상태로 왼쪽 발을 재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한 여름에 단단한 깁스 속에서.
몸의 균형이 깨지니 생활의 균형도 깨진 상태였다. 회사를 한 달 넘게 쉬어야 했고, 집에서도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역할을 못한 채 병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했다. 생활의 균형이 깨지니 마음의 균형에도 금이 가고 있었다. 오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내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균형 회복은 균열의 역순일 듯하다. '몸의 균열 -> 생활의 균열 -> 마음의 균열'로 상황은 발전했다. 하지만 회복은 '마음의 균형 -> 생활의 균형 -> 몸의 균형' 순이 맞을 것 같다. 먼저, 쉽게 끝날 상황이 아님을 인정하고 재활 치료가 내 몸을 부상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줄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다음 달라진 생활 속에서 새로운 생활 균형들을 찾아가야 한다. 마지막이 꾸준한 재활을 통해 몸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몸이 나아지고 있어요'라는 말을 기대한 순진했던 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