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 부자다

다리 골절이 가져다준 시간의 풍요로움

by 오늘도 생각남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이웃 주민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자 노인은 "이 일 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개월 후, 도망쳤던 말이 암컷 말과 함께 돌아왔다. 주민들은 "노인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며 축하했지만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 라며 기뻐하지 않았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다시 위로를 하자 노인은 이번에도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며 낙담하지 않았다. 얼마 후, 오랑캐가 침략해 왔다. 나라에서는 징집령을 내려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야 했다.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고사성어 '새옹지마'(변방 새 塞, 늙은이 옹 翁, 갈지 之, 말 마 馬)의 유래다. 요즘 나는 온몸으로 '새옹지마'를 경험하고 있다. 2주일 전 발등뼈가 부러졌다. 병원에서는 깁스를 한 채로 6주 동안은 다친 발로 바닥을 딛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6주 후에는 깁스를 풀고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재활 이후에도 다리가 사고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깁스한 채로 못 움직이는 것도 서러운데 평생 불완전한(?) 발을 갖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니.


찬찬히 8월 한 달을 돌아봤다. 그런데 8월은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이 더 많았다. 그것도 다리 골절이 만들어 낸 기쁜 일들이.


골절 진단을 받고 6주 동안 병가를 냈다. 예상치 못한 휴가였다. 평소에 몸으로 잘 놀아주던 쌍둥이들과 놀아줄 수가 없었다. 집안 일도 평소처럼 적극적으로 도울 수가 없었다. 나는 불가피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쌍둥이 육아로부터 가사로부터 '깁스'라는 단단한 보호망이 쳐진 것 같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자꾸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평소 시간이 주어진다면 꼭 하고 싶던 것들이 있었다. 바로 읽기와 쓰기. 강원국 작가님의 책을 읽고서 '읽기와 쓰기를 통한 입력과 출력의 선순환'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충분히 읽고 또 거침없이 써보고 싶었다. 출력의 삶을 살기 위해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해서 8월 초에 합격했던 차였다. 남들이 '1일 1 깡'을 실행하고 있을 때 나는 '1일 1 브런치'를 도전하고 있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힘들었을 '1일 1 브런치'가 병가기간이라 가능했다. 브런치에 올린 글 중에는 '다음(daum)'에 노출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시골 어머니가 보내주신 곶감 이야기, 쌍둥이와의 첫 분리수거 이야기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하는 책들도 일주일에 몇 권을 읽을 수 있었다. 일주일 새 몇 권의 책 마지막 장을 덮는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주었다. 내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책은 글을 불렀다. 읽고 나서 느낀 단상들을 간단히 브런치에도 올렸다. '읽기와 쓰기를 통해 입력과 출력의 선순환의 삶'이 이뤄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다리 골절이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꿨을 일들이었다.


다리 골절 소식을 듣고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전화로 하신 말씀이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는데
너무 낙심하지 말거라.
그동안 야근으로 지친 몸
이번 기회에 좀 잘 추스르고.


보통 무협지에서는 주인공이 강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나는 뼈를 내주고 시간을 취한 격이었다.


2주의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4주의 시간이 남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또 어떤 글들을 출력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회사에서의 내 시간은 멈췄다. 하지만 멈춰있던 나 '자신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꿈인가 해서 볼도 꼬집어 보고 속으로 외쳐도 본다.

나는 시간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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