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츤데레 B형님한테 카톡이 왔다. 다리 골절로 병가를 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모양이었다. 특유의 츤데레 스타일로 다리 골절을 '자해'로 표현하고 있었다. 부러진 건 '다리'였는데 B형님은 '간과 폐'를 걱정하고 있었다. B형님은 알고 있었다. 내 과거를 그리고 내 성격을. 몇 개월 전 계속되는 고열로 병원을 찾고서 '폐렴' 판정을 받았다. 혹시나 코로나가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다. 며칠 회사를 쉬었다.
마흔이 넘어서부터였을까? 내 몸은 많이 지쳐있었다. 30대는 야근이 일상이었다. 사무실 일은 바빴고, 꼼꼼한 성격 탓에 나는 일을 쉽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누적된 피로로 나는 쉽게 피로감을 느껴갔다. 진해진 다크서클은 회사에서 내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야근으로 저녁 8시만 넘겨도 다크서클은 나를 '판다'로 만들었다.
병가를 낸 후 몇몇 회사 동료와 선배들이 다친 다리 조심하고 몸 잘 추스르라는 카톡을 보냈었다. B형님의 카톡은 달랐다. '다리 골절'이라는 상황을 10여 년 간의 내 회사생활과 내 건강 상태라는 큰 틀에서 보고 있었다. 카톡을 보면서 '맥락과 본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도 건강 관련해서 근본적인 관리를 강조하시며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양약은 병의 현상을 치료하고 한약은 병의 근본을 치료한단다
어머니는 양약 치료를 스프링을 누르는 것으로 비유하셨다. 임시방편으로 병을 꾹 눌러놓는 것이라 언제든지 다시 튀어 오를 수가 있다는것이다. 반면, 한약치료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병의 뿌리를 뽑는 근본적인 치료라는 말씀이셨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야겠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B형님의 카톡은 지금 내가 어떤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정리해주었다.
문득, 고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노인들은 그 사람만 보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처지를 함께 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오랜 기간 수형생활을 하셨다. 그동안 많은 출소자들과 만기 인사도 나눴다. 재소자들은 출소자들을 보며 '쟤는 1년 안에 다시 들어올 거야', '쟤는 두 번은 다시 들어올 거야' 하는 예측을 한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예측은 번번이 틀렸지만 수형생활을 오랫동안 했던 노인의 예측은 정확했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출소자의 부지런함이나 인성 등 그 사람만을 본 반면, 노인은 출소자들의 처지를 함께 봤다고 한다. 감옥으로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과 처지를.
개인의 성품이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빙하의 한 단면이라면 그 사람의 상황과 처지는 수면 아래 빙하의 큰 몸통이라 할 수 있다. 노인의 지혜처럼 한 사람의 삶은 단순히 그 사람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과 처지를 함께 고려해야 정확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는 아니다.
일견 맥락없에 보이는 츤데레 B형님의 카톡은 내 건강상태의 맥을 제대로 짚어주었다. 진정한 치료는 마음의 치료라고 했던가?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한거풀 벗겨지는 기분이었다.